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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총선, 노무현이 남긴 흔적들
'공터 유세', '새로운 날들', '부산 시민들을 욕하지 마십시오'와 함께 떠나는 20년 전 오늘



2000년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기간 중 유세단과 함께 율동하는 노무현 후보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협 속에서도 1988년 이후 역대 최고 투표율 66.2퍼센트를 기록하며 대장정의 막을 내린 제 21대 국회의원 선거. 그간의 여독이 달래질 때도 됐건만 가열됐던 선거 열기는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고 있습니다. 환희와 한탄, 여러 색채의 감회와 비평들이 쏟아지며 승자와 패자라는 명암을 더욱 짙게 만들고 있습니다.

20년 전 오늘, 핑계는 없었습니다. 상대를 깎아내리며 스스로를 정당화 하지도 않았습니다. 되레 지지자들의 상대에 대한 애먼 원망을 점잖이 나무랐던 그였습니다. 승자와 패자, 선과 악 같이 갈등을 조장하는 프레임을 일갈하였습니다. 그날의 노무현에게는 자신과 정파를 위한 변론이 아닌, 오로지 우리 사회와 사람을 위한 담담한 제언만이 있었습니다.

이번 사료이야기에서는 2000년 제16대 총선 당시 노무현을 담은 사료 3편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과 여러 명언들이 탄생한 순간들의 기록입니다. 선거의 승패가 아닌, 선거로 만들어질 대한민국을 바라보았던 노무현과 함께 제21대 총선의 여운을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바보 노무현의 탄생




어린이들 사이에서 유세하는 노무현 후보

‘바보 노무현’. 험지인 부산 북강서 을에 기어코 출마한 새천년민주당 후보 노무현을 두고 붙여진 별명입니다.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지던 서울 종로구 공천을 마다하고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는 일념에서 택한 험로였습니다.

새천년을 여는 선거, 임기 중반 대통령의 중간 평가, 최초의 낙천낙선운동 전개 등 새로운 정치를 향한 열망이 집중된 중대 선거였습니다. 그만큼 정당과 후보들 간 경쟁도 치열했던 당시였습니다.

어르신께 인사드리기 위해 다급히 뛰어가는 노무현 후보

여느 후보들과 달리 노무현에게서만은 비방과 힐난의 목소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케케묵은 지역주의 타파에 대한 의지와 서민을 위한 공약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습니다. 시간이 아까울 법도 한데, 투표권이 없는 어린이들과 인사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무심히 지나쳐가는 유권자 한 명에게까지 헐레벌떡 뛰어가 인사하던 그에게서 정치인의 권위적 자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바보 노무현만이 있었습니다.


16대 국회의원선거 노무현 선거벽보
 
<공터 유세>
공터에 울려 퍼진 노무현의 함성




2000년 3월 29일 부산 강서구 명지시장 공터에서의 유세

내내 우세가 점쳐진 여론조사 결과가 의아하리만큼 유세 현장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습니다. 3월 29일 찾은 강서구 명지시장 공터에는 지지자 대신 정적만이 자리를 메웠습니다. 그야말로 ‘남루한’ 유세 현장이었습니다.

그냥 지나쳐 갔을 수도 있을 현장, 치욕감을 느끼리만큼 무관심한 현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겸연쩍은 웃음과 함께 마이크를 든 노무현의 목소리에는 진지함이 묻어 나왔습니다. 텅 빈 공터였지만, 수백 명을 상대로 말할 때와 다름없는 진지함이었습니다.

“여러분, 국회의원선거 왜 합니까? 국회의원 왜 뽑습니까? 일 시키려고 뽑습니다. 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일 할 사람 뽑아줘야 됩니다. 국회의원 뽑아가지고 어디 벽에 걸어 놓을 것도 아니고, 누구누구 밉다고 화풀이 한다고 선거하는 일도 아닙니다. 그저 일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당이 일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일하는 것입니다. 우리국민들과 정치인이 함께 노력하면 지역대결정치를 끝낼 수 있습니다. 이제 인물과 정책으로 서로 경쟁하는 그런 합리적인 정치시대로 가야됩니다……. 여러분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열심히 하겠습니다.”

들릴 듯 말 듯한 박수소리만이 절박하게 울려 퍼진 유세를 맞이했습니다. “울고 싶기도 했고 다시, 남들이 보지 않으면 다시 도망가버리고 싶기도 했습니다.” 라고 했던 그였습니다. 그럼에도 노무현은 분열주의 극복과 국민 통합의 신념 하나로 수모를 견뎠습니다. 지역감정 조장과 민주당 심판론만으로 일관했던 상대측의 공세에 민심이 심상치 않았지만, 묵묵히 그리고 열정적으로 공터에서의 목소리를 되풀이하였습니다. 선거 하루 전 쓸쓸한 밤거리, 그렇게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부산 갈매기’를 부르며 마지막 유세를 마쳤습니다.


<다큐멘터리 '새로운 날들'>
노무현의 다독임


2000년 총선 다큐 '새로운 날들'

마이 아카이브에 담기

TV에서 노무현 후보의 낙선을 알리자 상황실은 적막으로 가득 찼습니다. 한나라당 허태열 후보 4만 646표(53.22%), 노무현 민주당 후보 2만 7,136(35.69%)의 큰 표차였습니다. 세상이 무너진 듯 목 놓아 울음을 터뜨리는 이도 있었습니다.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노무현이 씁쓸한 미소와 함께 입을 뗐습니다. “다 모여 봐. TV를 끄고 여기 모여 봐.”  안타까움에 지지자도 낙선자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모두들 고생했어요. 고생했고, 그 결과가 좋았으면 참 좋은데, 결과가 안 좋은 건 할 수 없고. 우리보다, 우리가 겪은 이런 거보다 더 참담한 일을 많이 겪으면서들 살아요. 훨씬 더 참담한 일들을 다 겪고 또 일어서고 그렇게 하는게…….”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애써 머금으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다독임으로 긴긴밤을 갈무리합니다.

“온갖 생각이 다 들겠지요. 이웃사람들 보기도 그렇고, 분하기도 하고, 제일 좋은 약이 시간이에요.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은 시간이 약이에요. 시간만큼 확실한 게 없어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시간은, 시간만큼 확실한 대책은 없어요. 고생 좀 더하고 갑시다. 개인적으로도 이제 상처를 입은 것은 시간이 흐르면, 시간이 가면 잊어버려지고. 그다음에 세상이 바뀌는 것도 시간이 걸려요.”

애써 대책본부의 동료들과 지지자들을 다독이는데 이어 ‘노하우’ 홈페이지에 쇄도하는 안타까움들도 위로했습니다. “농부가 밭을 탓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나라와 부산을 사랑합니다. 우리 또 함께 힘을 모아 나갑시다.”


<시사저널> 기고문
‘부산 시민들을 욕하지 마십시오’




<시사저널>에 게재된 기고문 '부산 시민들을 욕하지 마십시오'

다독임이 부족했던 탓일까, 선거 이후에도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위로의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부산 시민들에 대한 원망과 울분,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위로와 감사, 앞으로의 다짐과 소망, 복잡했던 심경을 <시사저널> 기고문 ‘부산 시민을 미워하지 마십시오’에 정연하게 담아냅니다.

노무현은 ‘패배’라는 단어를 거부했습니다. 결과에 불복하는 것이 아닌, 선거를 승패의 이분법으로 나누는 관행을 거부한 것입니다.

“승리니 패배니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누구와도 싸운 일이 없습니다. 상대후보와 싸운 일도 없고 부산 시민들과 싸운 일도 없습니다.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추구해야 할 목표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뿐입니다.”

이어 정치와 선거를 싸움과 같이 몰고 가는 것은 결국 아무 것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고 힘주어 얘기합니다. 특정한 지역을 지역주의의 근원으로 지적해 정쟁화 하는 것 자체가 지역주의의 또 다른 얼굴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낙선의 아픔을 달래주었던 링컨이 그러했듯 승자와 패자,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이분법에서 눈을 돌려 정의와 평화, 포용과 통합을 함께 지향하기를 당부했습니다.

“저는 이 나라와 부산을 사랑합니다. 우리 또 함께 힘을 모아 나갑시다.”

“저의 부산행을 두고 민주당의 ‘동진’이라거나 지역감정 ‘돌파’를 위하여, 또는 지역감정과 ‘싸우러 갔다는 표현들……. 지역감정이라는 것이 영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 민주당의 동진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고 정면 돌파나 싸움으로 해결될 일이 아닌데 자꾸만 전투적인 용어로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지역감정 해소에 해로울 것만 같다는 것이 근래 저의 생각입니다……. 지역주의가 어디 부산만의 문제인가요? 지역주의가 이기주의와 편견 또는 독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 누구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에서 출발해야 지역주의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지자들에게는 달갑지 않을 수도 있는 소리였지만, 자신의 말처럼 이기주의, 편견, 독선을 모두 벗어던진 진심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더 커진 지지층과 후원으로 새로운 내일로 향했습니다. 멀리보고, 바르게 보고,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2년 후, 그렇게 바보같았던 그의 여정은 대통령의 자리로 그를 이끌었습니다.


“나는 계속 지면서도 그냥 그렇게 살아왔어요” 
오늘을 향한 노무현의 메시지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승자의 환호도, 패자의 눈물도 긴 역사 속 찰나의 순간들입니다. 승자의 기쁨에 박수를 보태고, 패자의 눈물을 함께 닦아주며 서로를 갈라놓는 벽은 허물어집니다. 그렇게 싸움이 아닌 건강한 경쟁과 통합이 자리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에서 노무현이 전한 마지막 인사는 오늘의 승자에게도, 패자에게도 큰 귀감으로 남을 것입니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내가 바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다만 눈앞의 이익보다는 멀리 볼 때 가치 있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당장은 손해가 되는 일이 멀리 보면 이익이 될 수가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모두 ‘바보처럼’ 살면 나라가 잘 될 것이다.”(<운명이다> 163 쪽)


  • 강성민/사료콘텐츠팀
  • 2020.04.17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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