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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이야기 유의미한 주요 사료를 소개하고 그 배경과 맥락을 정리해 제공합니다.

'청와대 셰프' 신충진 씨가 추억하는 노무현 대통령 "삼계탕과 붕어찜 즐겨 드셔"

"막창 구워드렸더니 '그래, 이거야' 하시더라고요"

 

 
 
청와대에는 ‘운영관’이라는 직책이 있다. 청와대 살림살이를 관장하는 총무비서관실 소속으로, 대통령의 식사와 대통령이 주관하는 국빈 만찬을 비롯한 대·소연회 준비를 총괄한다. 공무원 직제 상 행정관이지만 통상 30명 이내 손님의 식사는 직접 주관하는 ‘청와대 셰프’인 셈이다. 

신충진 씨는 참여정부 청와대의 운영관이었다. 제주 신라호텔 총주방장으로 일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운영관을 맡았다. 신충진 전 운영관은 사료편찬특별위원회와 구술면담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노 대통령을 처음 만난 건 청와대로 출근한 첫날이었다.

“출근 첫날 그때가 2003년 3월 23일로 기억해요. 그날 저녁에 처음 뵀습니다. 가서 인사드렸더니 악수해주시면서 ‘청와대 일이 힘들 텐데 할 수 있겠는가’ 그러셔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말씀드렸죠. 그러니까 ‘다 잘하겠지만 전문적인 요리는 전문식당에 맡기는 것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하시더라고요. 몇 사람이서 다 하려고 생각하지 말라고, 그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요리나 음식의 특성, 특산물, 지방별 특색, 그런 걸 많이 알고 계시더라고요.”


“남기면 버린다, 반찬 줄이라” 지시에 전전긍긍
그래서 종종 삼계탕, 복요리 등 노 대통령의 단골집에서 음식을 사다드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밖에 대통령이 좋아했던 음식은 뭐가 있었을까. 

“보니까 서민적인 음식들. 좋아하신 게 제가 붕어찜 같은 거 해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셨어요, 어려서 드신 음식이어서 그런지. 붕어찜이 가시가 많거든요. 그렇게 정성스럽게 가시를 발라서 고대로 잡숴요. 그 다음에 막창 같은 거. 한 3년 지나니까 저도 메뉴가 자꾸 고갈되는 거예요. 고민하던 차에 누가 ‘막창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서 ‘한번 해드려 보자’ 전문식당에서 사다가 숯불 피워 구워드렸더니 대통령께서 ‘그래 이거야, 내가 왜 이걸 생각을 못했지’ 그러면서 맛있게 드시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메뉴에 가끔 반영했어요.”

노 대통령은 맛있게 먹은 음식이라도 그 자리에서 자신에게 더 가져오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더 갖다 주면 남기게 되고 남기면 결국 버리게 된다는 것. 때문에 한번 비운 반찬은 그것으로 끝, 빈 반찬 그릇을 못 채우게 했다. 신충진 운영관에게는 그런 일이 스트레스였다. 

[신충진 운영관 구술영상 1] 노 대통령 “반찬 더 줄여라”


어려웠던 일 가운데 또 하나는 대통령의 밀가루 알레르기. 심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피로가 쌓이거나 신경을 많이 쓰면 알레르기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때문에 밀가루는 절대 메뉴에 반영하지 않았다. 밀가루 없는 메뉴 구성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무사통과’ 사례도 있었다. 대통령이 더러 일요일 아침은 쉬라고 직원들을 배려해 조찬 준비를 안 할 때에는 평소 좋아하던 감자, 고구마와 과일 그리고 라면을 챙겨놓았다. 신기하게도 라면에는 그런 알레르기 반응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시기적으로 어려운 때도 있었다. 탄핵 당시가 그랬다.

“그때는 상당히 힘들었어요. 대통령께서 업무를 놓으시고 관저에만 계속 계시는 건데 얼마나 갑갑하고 그러시겠어요. 제 일이 표 나는 일은 아니지만 분위기를 좀 바꿔드려야 할 텐데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이 결국은 식단이거든요. 식단을 바꾸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음식 맛을 느끼는 것도 상황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조미료나 간, 매운 정도를 좀 강하게 해드리기도 했고 지방 특산물, 대통령께서 평소 이용하시던 식당에 가서 음식을 다른 때보다는 많이 사왔던 거 같아요.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었습니다.”

‘우유 건배’ 제안 흔쾌히 수용…‘발리 데이트’ 연출도물론 안타까운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의 ‘우유 건배’ 이야기가 그렇다. 2003년 6월 30일 당시 <청와대브리핑>에 ‘우유 건배, 좋습니다’라는 글로 소개되기도 했다. 

“TV에서 낙농가들이 우유 남는다고 시위하면서 길거리에 쏟아 붓는 장면을 봤어요. ‘아, 저걸 건배주로 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대통령님하고 여사님 두 분이 오찬을 드실 때 말씀을 드려봤어요. ‘지금 우유가 남아서 시위를 하고 어려움들이 있는데 오찬 때 건배주를 주스 대신 우유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하고 말이죠. 대통령님이 뒤돌아보시더니 ‘어, 그거 좋은 생각인데 당장 그렇게 하자’ 그러시면서 ‘이 시간 이후로 우유로 건배하는 것도 집어넣어라’고 하셨어요. 흔쾌히 받아들이셔서 바로 실행했죠.”

빡빡한 국정일정 속에 짬을 만들어 대통령에게 개인적인 시간을 선사하는 것도 운영관의 몫이었나 보다. 신충진 운영관은 대통령과 여사님 주연의 ‘발리에서 생긴 일’도 소개했다.
 
[신충진 운영관 구술영상 2] 대통령 내외의 로맨틱한 저녁식사


신충진 운영관은 무엇보다, 대통령을 배려가 많았던 분으로 기억한다. 청와대 오·만찬 석상의 옷걸이나 세배 이야기가 그런 사례다. 

“세배하면 맞절하실 정도로 배려심 깊어” 

“본관이나 관저에 보면 원래 대통령이 사용하는 옷걸이밖에 없었어요, 하나밖에. 하루는 절 부르셨어요. ‘왜 대통령 옷걸이밖에 없느냐, 손님들은 어떡하느냐’ 물어보셔서 ‘손님들은 의자에 걸쳐놓지 않습니까. 말씀드렸죠. ‘그럼 저 옷이 다 구겨질 텐데 내 것만 하지 말고 손님들도 걸 수 있게 옷걸이를 준비해라’ 그런 지시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전에 없던 옷걸이를 쭉 해놨어요. 오신 손님들 똑같이 다 배려를 하라는 말씀이셨고. 심지어는 명절에 제가 세배하면 내려와서 같이 맞절을 하셨어요. 되게 당황스럽죠, 저는. 그냥 상석에 앉아서 절 받으셔야 저희는 더 편안한데 같이 또 내려와 맞절하시고 그러면 당황스럽고, 그런 정도로 하여튼 배려심이 깊으셨습니다.”

대통령이 아침 7시, 낮 12시, 오후 6시 반, 식사시간을 철저히 지키려 했던 것도 그러한 배려의 일환이었다고 기억한다. “시간을 안 지키면 저희들이 기다리는 거에 대해서 상당히 미안해 하셨다”고 한다. 

[신충진 운영관 구술영상 3] “서서 기다리지 말고 인터폰 해라”


노 대통령을 식사로 ‘보좌’하는 운영관으로서 그는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라며 모친상을 지키지 못했던 일도 술회했다. 대통령의 러시아 순방을 앞두고 모친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자신이 없으면 일을 대신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수행 길에 나섰다. 보좌진들이 ‘비행기 편을 마련할 테니 돌아가시라’고 해도 마다했다. 결국 순방 도중 소식을 전해들은 대통령에게 “그런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어머니 일을 치러야지 자네가 오면 어떡하나”라며 ‘꾸중’을 들었다. 대통령의 마지막 식사도 직접 챙겼다. 청와대에서만이 아니라 퇴임 날 봉하로 내려가는 기차 편에서였다. 

“원래 기존 운영관이 새 대통령을 맞이하는 게 맞아요. 취임식 날 오찬과 만찬을 준비하는데, 이전 대통령들께서는 퇴임하시고 돌아간 곳이 연희동, 상도동, 동교동 다 서울이잖아요. 서울로 바로 가시니까 거기서 오찬 준비하고 다 이루어지는데 우리 대통령께서는 퇴임식 끝나고 5시간을 가야 되잖아요. 가면서 중간에 오찬을 하셔야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건 아니라고 봤어요. 청와대에는 기존 직원들이 다 있으니까 그 사람들이 챙겨도 된다고 판단했고, 나는 새 대통령보다 우리 대통령님 오찬까지 챙기는 게 맞다고 판단했어요. 그래 기차를 탔죠. 제가 탄 거 보더니 대통령께서 ‘왜 대통령 식사 준비 안 하고 여기 탔는가’ 물으시더라고요. ‘차질 없이 준비해 놓고 왔습니다’ 그랬죠. 그렇게 기차 안에서 도시락을 해드렸지요.

“삼계탕 사가려고 했는데”…이루지 못한 봉하 방문노 대통령 퇴임 직후 신충진 운영관도 청와대 생활을 정리하고 회사로 복귀했다. 봉하마을에도 두 번 방문했다. 내내 대통령의 식사를 챙기다가 처음으로 노 대통령과 차도 함께 마셨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신충진 운영관도 갑작스런 대통령의 서거로 못다 한 일을 간직하고 있었다.

[신충진 운영관 구술영상 4] “4월에 가자 그랬었는데…”

면담 말미에 대통령을 추억하는 대목에선 애틋함이 묻어났다. “노무현 대통령이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을 쭉 지켜보면서 저 자신도 많이 변한 거 같아요. ‘나도 남한테 베풀면서 살아야지’ 그런 거 많이 느꼈지요. 참, 베푸는 삶 사신 거 같아. 우리 대통령.” 


 

  • 김상철/ 노무현재단 사료편찬특별위원회
  • 2012.02.07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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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분의 그런모습들이 그 전후의 대통령들과 차별되는 큰부분인것같아요, '나는 왕이오!!' 가 아닌, 순수하고 인간적인모습...

    어린시절, 대통령이 마치 신이라도 되는듯 절대권력으로 교육받았던 우리 세대에겐 어쩌면 낯설기까지한..
    한경훈 2013-01-07 17: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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