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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이야기 유의미한 주요 사료를 소개하고 그 배경과 맥락을 정리해 제공합니다.

가난한 고시생의 두 가지 흔적

[기증사료이야기7 홍병연] 손때 묻은<신헌법>과 합격수기 실린<고시계>

 

1975년 <고시계> 7월호에는 제17회 사법시험의 유일한 고졸 합격자 수기가 실립니다. 그 한 대목입니다.

(14회 사법시험 합격자) 발표 후 5-6개월을 이유 없이 허송했다. 제대 후 공부도 시작하기 전부터 마을 처녀에게 마음을 뺏기기 시작하여 상대방의 단호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열을 올리게 되고 8개월에 걸쳐 집요하게 추근거려 1차 시험 직전에야 겨우 처녀의 마음을 함락시키고는 안도했는데, 이제 그녀가 결혼 적령을 넘었다는 사실과 고시와 연애는 양립할 수 없다는 중론 사이에서 그녀와 나는 고민의 연쇄반응을 일으켰고, 또 이틀이 멀다 하고 만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애정의 열도에 비례하여 공부를 위한 시간에의 집착이 강하여 심리적 갈등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9월에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장유암이라는 절에 들어갔다. 국사의 추가로 부담이 늘었지만 시험이 연기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 ‘수석 합격’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열심히 공부를 했다.
73년 1월에는 예년의 시험 대신에 그녀와 결혼했고 5월에는 아들도 낳았으나 나는 여전히 절에서 계속 열을 올리고 있었다.

다짐과 방황의 ‘장유암 시절’

이렇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이유는 홍병연 씨가 기증한 오래된 두 권의 책을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홍병연 씨는 노무현 대통령을 장유암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장유암은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에 있는 절입니다.

합격수기를 보면, 노 대통령은 1972년 3월 제14회 사법시험에서 낙방하자 그해 9월 장유암으로 들어갔고 1973년 1월 결혼 이후에도 한동안 머물렀습니다. 그러다 같은 해 5월 큰형님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큰 충격에 빠집니다. 장례를 치르고 다시 장유암으로 돌아갔지만 방황 끝에 제15회 사법시험을 앞두고 집으로 내려갑니다. 이때가 1973년 6월경이었습니다.

15회, 16회 두 번의 쓴잔을 더 마시고 1975년 3월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기까지 노 대통령은 집과 뱀산 자락의 마옥당(磨玉堂)을 오가며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도 더러 장유암에 머물렀던 모양입니다. 홍병연 씨는 노 대통령을 1974년 10월경 장유암에서 처음 만났다고 기억합니다.

“군에서 제대하고 1974년 9월에 나도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장유암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는 노 대통령이 책은 다 두고 내려간 상태였어요. 좀 지나니까 노 대통령이 올라오더군요. 한달 정도 같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보다 두 살 위였죠.”

1974년 가을에 어느 고시생은

 
 

<신헌법>. 길지 않은 ‘장유암 인연’을 뒤로하고 노 대통령이 장유암을 떠나면서 홍병연 씨에게 준 책입니다. 노 대통령이 공부하던 법률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1974년 박영사에서 펴낸 책인데, ‘1972년 유신헌법의 통과로 법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며 홍병연 씨에게 줬다고 합니다. 책 곳곳에 고시생 노무현의 손때가 남아있을 것입니다. 홍병연 씨에게도 장유암 시절, 노 대통령에 대한 몇 가지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장유암에는 의자 같은 게 없었는데 노 대통령이 칡갱이 줄을 꼬아서 의자를 만들었어요. 칡갱이 줄로 묶어서 말리면 튼튼해지거든. 그래서 자기가 의자로 쓰다가 나중엔 저한테 넘겨주고 갔죠.”

“공부하던 곳이, 말이 방이지 거의 토굴 수준이었거든. 새벽에 누가 올라와도 몰라요, 하도 깜깜해서. 어느 날 주지스님이 절을 비우고 외출을 하셨는데, 노 대통령이 밤에 장난삼아서 ‘○○야(주지스님 법명)~ 맛난 거 사가 온나’ 그러고 있었단 말이죠. 근데 갑자기 주지스님이 ‘무현아! 나 여기 왔다’ 그러면서 쑥 나타나는 거예요. 당황한 대통령이 한동안 스님을 피해 다니고 그랬습니다.”

홍병연 씨는 지난해 6월 <신헌법>과 함께 또 한권의 책을 기증해주셨는데요. 노 대통령의 합격수기 ‘과정도 하나의 직업이었다’가 실린 <고시계>가 그것입니다. 서두에 인용한 그 책이죠. 저희도 처음에 출판사인 고시계사를 통해 이 책을 구하려고 했는데 보관본이 1권밖에 없어서 촬영이라도 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홍병연 씨 덕분에 <신헌법>과 함께 또 하나의 소중한 사료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아, 참으로 절망도 깊었던…”

 
 

1975년 <고시계> 7월호에 실린 수기 원문을 서비스하고자 했는데 보시다시피 책이 오래되어서 스캔을 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부득이하게 아직 노무현사료관을 통해 공개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조만간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 해당 수기는 노 대통령의 저서 <여보, 나 좀 도와줘>에도 실려 있습니다. 자신의 수기를 소개한 <여보, 나 좀 도와줘>의 한 대목입니다.

이번에 책을 내기 위해 고시계 75년 7월호를 어렵게 구해 오랜만에 내 합격기를 읽어보았다.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 참으로 절망도 깊었고 일도 많았던 고시 공부 시절…… (194쪽)

노무현사료관에서 만날 수 있는 고시계가 하나 더 있습니다. 제17회 사법시험 합격자 좌담회가 실린 1975년 6월호입니다. 유일한 고졸 합격자로 노 대통령이 좌담회에 참석했습니다. 이건 원문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제17회사법시험 좌담회[고시계 통권220호 : 19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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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철/ 노무현사료연구센터
  • 2014.03.28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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