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서거 16주기 계기 ‘플레이 2002 : 노무현 캠페인, 다시 접속하다’ 시리즈1
World’s first internet president logs on(세계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이 로그온한다)
< 2003.2.24. The Guardian>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을 하루 앞둔 2003년 2월 24일 영국 주요 일간지 가디언이 내건 기사 제목입니다. 해당 기사는 대한민국의 앞선 인터넷 환경과 젊은 세대의 활발한 온라인 참여를 노 대통령 대선 승리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했습니다.
지금이야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겨지고 정치인이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시민과 소통하는 일이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지만 16대 대선이 치러지던 2002년만 해도 상황은 많이 달랐습니다. ‘삐익~’하는 모뎀음과 함께 온라인에 접속했던 PC통신 시대를 지나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그 시절, 인터넷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완전히 새로운 장이었습니다.
2002년 대선은 우리 사회가 인터넷의 위력을 실감한 첫 선거였습니다. 그 중심에는 온라인 게시판을 기반으로 한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참여, 오마이뉴스 등 인터넷 매체의 약진, 그리고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미디어 플랫폼이 있었습니다. 기술과 시대의 한계는 있지만 지금의 소셜 미디어 역할을 담당했던 인터넷 방송국 티비로(TVRoh)와 라디오로(RadioRoh), 그리고 만화로(ManaRoh)가 그것입니다.
최초의 정치인 영상 플랫폼 티비로(TVRoh)
2002년 10월 22일 노무현 방송국, ‘티비로’가 문을 열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공식 유튜브 채널 개설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유튜브의 시작을 알린 19초짜리 최초 영상이 업로드 된 시점이 2005년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정치 영역에서 인터넷 방송의 등장이 당시로서 얼마나 참신한 시도였을지 충분히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새로운 매체를 노무현 후보는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티비로 개국 행사에 참석한 노 후보의 축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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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공중파 매체가 모두를 지배했는데 과연 인터넷 방송 하나를 가지고 어떻게 우리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을까. 얼마만큼 멀리 들리고, 얼마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들릴 수 있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이런 것이 걱정되기도 합니다만 5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그것도 곧 시간문제다, 콘텐츠의 문제다, 결국 콘텐츠만 좋으면 인터넷 방송도 공중파 방송과 경쟁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앞으로의 시대는 수평적 네트워크의 시대로 갑니다. 수평적 네트워크의 시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인터넷TV와 같은 과학문명의 변화라고 할 것입니다. (중략) 이제는 국민이 우리 정치를 함께 이끌어가는 주역이 되는 시대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전의 시대를 엘리트 정치의 시대라고 했다면 앞으로의 시대는 대중 정치의 시대입니다. 이전의 시대를 소극적으로 국민들이 이끌려가는 정치였다고 한다면 이후의 시대는 국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정치인들을 함께 이끌어가는 수평적 네트워크의 시대로 변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변화의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주의에 도전했던 2000년 총선 낙선 이후 인터넷에서 불어온 바람은 조직도 자본도 부족했던 비주류 정치인 노무현을 마침내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 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 누구보다 인터넷의 가능성과 시민 참여의 힘을 굳게 믿었던 이유입니다. 무엇보다 인터넷이 만들 수평적 네트워크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었습니다.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무기로 한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 전통 매체를 위협하는 오늘날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이후의 시대’에 이미 도착했음을 실감합니다.
해당 연설은 아래 링크 영상 33분 42초부터 시작되어 15분가량 이어집니다. 노무현 대통령 육성으로 전문을 확인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클릭] 티비로 개국 행사 연설 보기 ☞ https://buly.kr/H6hfDAM
생생한 현장 스케치와 방송 출연 영상, 기자회견 등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영상 740건을 서비스하는 티비로는 △투데이 노무현(주요 활동, 뉴스) △니들이 노무현을 알아(생애, 정치철학) △정책브리핑(정책 자료, TV토론, 연설) △내가 좀 알지요(지원 연설) △노무현과 어깨동무(네티즌 참여) 등 5개 코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민의 힘이 모이는 소통 플랫폼 라디오로(RadioRoh)
“신기하죠? 정당 뭐 이런 거하고 관련 있는 건물에 제가 이렇게 들어온다고 생각을 하니까 두드러기가 나는 것 같아요. 재밌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세상에 별일이 다 있구나 싶어요.”
2002년 12월 5일, 노무현 후보 대선 캠프 한편에 마련된 스튜디오 DJ석에 앉은 가수 신해철씨의 말입니다. 한 달 전이던 11월 4일 2시간짜리 생방송으로 시작한 노무현 후보 지지 방송 ‘라디오로’가 10시간으로 방송 시간을 확대한 날이었습니다. 신씨는 이날부터 대선 전야인 12월 18일까지 라디오로의 심야 코너 ‘저스트 세이노(Just Say Roh)’ 진행을 맡았습니다.
라디오로는 당시 한창 태동하던 오디오 기반 인터넷 방송 형식으로 청취자와의 소통 강화에 집중했습니다. PD, 엔지니어, 진행 등 1인 3역을 맡았던 라디오로의 실제 주역 김갑수씨는 이미 부산에서는 이름을 떨치던 라디오 DJ였습니다. 진행하던 방송을 그만두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방송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 대해 김씨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제 사실 누가 저한테 ‘왜 왔습니까? 노무현 후보가 되겠습니까?’하고 묻길래 그랬죠. 되고 안 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옳냐 그르냐가 중요한 거다.” (11월 5일 방송 중)
예정했던 2시간을 조금 넘기며 이어진 이날 방송 마무리하던 그의 발언에서는 기존 매체와 구별되는 라디오로의 지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까 약속드린 것처럼 밤에 아무 때나 ‘방송 듣고 싶습니다, 방송합시다.’ 해서 100명만 리플 달면 바로 튀어나옵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일단 2시간만 하도록 하고요. 저도 조금만 쉬고 점심 먹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루 종일 못하는 저의 안타까운 심정을 여러분들이 양해해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대선 후보 노무현 지지 확산과 결집이라는 선명한 방향성, 게시판을 통한 청취자와의 실시간 소통, 시간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유연한 편성 등 라디오로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거운동 방식이었습니다. 매일 2시간 생방송으로 시작해 4시간, 8시간, 10시간 그리고 대선 전야 철야방송까지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방송 시간도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시도를 성공으로 이끈 것은 댓글로, 전화로 각자의 지지 사연과 선거 운동 아이디어, 유세 현장 분위기 등을 공유하며 확산한 시민들이었습니다.
그 시절 인터넷 방송의 감성을 느껴볼 수 있도록 복원한 라디오로에서는 베스트 방송의 오디오 편집본 8편과 CM 5편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와 봉하마을 노무현기념관을 방문하시면 더 많은 자료 확인도 가능합니다.
[클릭] 라디오로 바로가기 ☞ https://buly.kr/FsIMLQe
23년 전 선거 기록을 다시 꺼내보는 이유
쉽고 친근한 만화를 통해 후보와 정책을 전달하는 플랫폼 ‘만화로(ManaRoh)’도 이번에 공개되는 귀중한 디지털 기록입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홈페이지였던 노하우 게시판의 베스트뷰를 재현한 ‘만화로 보는 베스트뷰’에서는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던 시민들의 진솔한 사연을 통해 당시 유권자들이 생각하던 우리 사회의 과제와 바람은 무엇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20여 명의 작가들이 자원봉사로 만화 작업에 참여해 각각 개성 있는 그림체를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우측 메뉴 하단에 ‘인쇄용 파일을 출력해서 노무현 홍보물로 이용합시다’라는 안내에서는 시대의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2002년 12월 19일 대한민국은 노무현 후보를 16대 대통령으로 선택했습니다. 인터넷에 모인 시민의 힘이 현실 정치에 참여해 세상을 변화시킨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앞서 소개드린 미디어 플랫폼에는 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시민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단순한 선거 기록이 아닌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시민 참여의 기록인 셈입니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2025년, 노무현사료관을 통해 공개하는 온라인 미디어 기록들이 2002년 시작된 변화의 의미를 반추하고 새로운 ‘이후의 시대’를 그려나가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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