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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에 관한 ‘실사구시’

[기증사료 이야기-9 한성안 교수] 노 대통령의 친필 지시메모

 

2004년 8월 4일자 한겨레신문에 한성안 영산대 경영학부 교수의 ‘두 눈으로 보는 새행정수도 정책’ 제하 칼럼이 게재됩니다. 글은 각국의 서로 다른 소득분배제도와 그 효과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이 질문에 매달려왔는데, 연구결과는 결코 이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이라는 제도의 존재 여부가 기업의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1990년대 저명 논문들을 조사해보면 이들 중 3분의 1 정도가 노조기업의 생산성이 비노조기업에 비해 더 낮으며, 나머지 3분의 2 정도가 노조기업의 생산성이 더 높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또 노조기업의 생산성이 분명히 높기는 하지만 그 규모는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제도를 통해 노동자간 임금격차는 크게 완화되었다는 점이다.

팩스로 받은 한 장의 친필메모

한 교수는 칼럼에서 새 행정수도 건설 필요성을 거론하며 반대 주장에 대해 “계산 가능한 ‘경제적 효과’는 물론 계산 불가능한 ‘사회적 효과’를 함께 볼 줄 아는 지혜로운 눈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칼럼 전문보기]

칼럼이 실리고 일주일 정도 지난 뒤 한 교수는 김수현 당시 청와대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비서관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데요, 팩스를 통해 한 장의 메모도 같이 받았습니다. 한 교수의 칼럼을 본 노무현 대통령이 김수현 비서관에게 전달한 친필 지시사항이었습니다.


홈페이지에 기증사료 이야기 연재를 시작한 지난 2월, 한 교수는 저희에게 이 메모파일을 기증해주셨습니다. 다음은 한 교수가 설명한 당시 상황입니다.

“김수현 비서관을 통해 받은 메모와 함께 노 대통령의 생각을 접할 수 있었는데요, 성장과 분배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서 벗어나 어떻게 새로운 틀로 접근할 것인가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대통령의 명확한 문제의식이 학자로서 놀랍기도 했습니다. 연구과제를 같이 진행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그 당시에는 나 스스로도 정리가 덜되어 있어서 자신이 없었어요. 부득이하게 과제를 수행하지는 못했습니다.”

한 교수는 “당시에도 성장과 분배에 관한 인식이 진보, 보수 모두 일률적이었다”며 “지금 내가 연구하고 정리하고 있는 실증 결과들을 노 대통령은 그때 정말 알고 싶어 하셨던 것 같다”고 회고했습니다. 한 교수는 한겨레신문 경제면에 ‘한성안의 경제산책’이란 고정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동반성장론, 비전2030으로 가다

김수현 당시 비서관도 “대통령이 메모해서 주신 걸 한 교수에게 팩스로 보내드렸다”며 그때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김 비서관은 “노 대통령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에 관한 실증적인 자료들을 많이 주문하셨다”면서 “그러한 문제의식이 동반성장론, 비전2030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참여정부 청와대 홈페이지인 청와대브리핑에는 총 247건의 대통령보고서가 공개되어 있는데요, 실제로 노 대통령 지시에 따라 분석·정리한 성장과 분배 관련 보고서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빈곤 및 소득분배와 개선효과 추이’(2007·아래 도표) ‘사회지출과 경제성장의 관계’(2006) ‘물흐름 효과의 개념 및 사례 분석’(2006), ‘OECD 국가의 사회지출과 경제성장’(2006) 등이 그것입니다. 일련의 보고서들은 분석결과 △사회지출의 증가가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실증적 증거가 없고 △감세가 세수증대 및 성장을 촉진하는 증거 또한 발견되지 않았으며 △복지국가의 조세구조가 더 성장친화적·기업친화적이라는 점 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와 관련한 노 대통령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을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2007년 11월 11일 KTV 특집 인터뷰 다큐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복지냐 성장이냐’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아주 옛날 사람들입니다. 지금 어느 나라에서 ‘복지냐 성장이냐’ 갖고 논쟁합니까? 이미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은 정책으로도 증명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클린턴도, 영국의 토니 블레어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습니다. 지금도 ‘분배냐 성장이냐’라고 얘기하면 오늘날 이 복잡한 문제를 절대로 풀 수가 없습니다.
 

정책도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그리고 2008년 1월 3일 재임 중 마지막 신년인사회에서 노 대통령은 “정치든 경제든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해서 정책도 세우고 평가하고, 비판”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저는 복지정책은 경제정책의 부수적인 정책, 경제정책에 따라붙는 그런 쪼가리 정책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경제정책과 대등하게 일체화된 그런 정책이고 전략이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근데 지금 어떻든 그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졌으니까, 앞으로 복지문제에 대해서 저는 걱정이 많습니다. 어쨌든 모로 가나 옆으로 가나 앞으로 5년 동안에 우리는 큰 실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경제가 특효처방만 하면 쑥 크는 것인지는 우리가 실험해야 될 것이죠? 토목공사만 큰 거 한 건 하면 우리 경제가 사는 것인지도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검증을 하게 될 것이고, 또 그렇게만 해서 경제의 성장률만 올라가면, 수출만 많이 되면 일자리가 저절로 생기는 것인지도 검증을 해야 될 것이고, 또 그것만 하면 복지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인지도 앞으로 우리가 검증을 하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참여정부 사회복지정책을 정리한 구술이야기를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친필메모를 기증해주신 한성안 교수께도 감사드립니다.

  • 김상철/ 노무현사료연구센터
  • 2014.04.14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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