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9월 1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태어났다.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로 재직하다 군사정권의 용공조작사건인 ‘부림사건’ 변론을 계기로 인권변호사가 되어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1988년 13대 국회의원에 당선, 정치에 입문한 뒤 제5공화국비리조사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청문회 스타’로 국민들의 각광을 받았다. 1990년 독재청산을 좌절시키고 지역주의를 노골화한 3당 합당(당시 4당 체제에서 집권여당과 두 야당이 합당)에 반대하며 야권통합을 주도해 민주당을 출범시켰다. 지역주의 극복과 국민통합은 이후 정치인 노무현 필생의 과제가 됐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부산에 출마해 낙선하고, 1995년 부산시장 선거와 1996년 15대 총선에서도 잇따라 고배를 마셨다.
1998년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되었으나 2000년 16대 총선 때는 지역주의 극복을 선언하며 다시 부산에서 출마해 낙선했다. 이로 인해 시민들로부터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한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탄생했다.이후 국민의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내고, 2002년 국민참여경선에서 ‘노풍’을 일으키며 새천년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선출, 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재임 시절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고, 탈권위‧참여‧자율‧분권의 리더십으로 국정 전반을 개혁했다. 2008년 2월 25일 퇴임과 함께 역대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귀향했고, 주민들과 함께 친환경생태농업을 중심으로 살기 좋은 농촌 만들기에 정성을 쏟았다. 2009년 5월 23일, 고향 봉하마을에서 서거했다.
“새 정부는 개혁과 통합을 바탕으로,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열어 나갈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로 가기 위해 저는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을 새 정부 국정운영의 좌표로 삼고자 합니다.” - 2003.2.25. 제16대 대통령 취임사
참여정부는 2003년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의 취임과 함께 출범했다. 주권자로서 시민의 힘, 실질적 민주주의 실현을 향한 열망이 탄생 배경이다. ‘참여’라는 명칭에는 진정한 시민 주권시대 개막과 참여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의지가 담겨있다. 2003년 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5년 동안 참여정부는 △원칙이 승리하고 국민주권이 바로 서는 ‘국민승리의 시대’ △경제와 복지,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하는 ‘새로운 도약의 시대’ △사회의 각종 독점과 집중, 갈등과 소외를 극복하는 ‘통합과 균형의 시대’ △남북관계의 질적 개선을 기반으로 한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이루고자 최선을 다했다.
권위주의를 앞세운 ‘제왕적 대통령’을 거부하고 권력기관을 중립화했으며, 부패정치·관치경제·권언유착 근절로 사회 투명성을 높였다. 장기적 체질 개선, 원칙에 입각한 경제정책은 내실 있는 성장과 경쟁력 강화,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 달성으로 나타났다.
복지예산 확대로 양극화 극복과 사회안전망 확충에 힘썼으며, 국가 중장기 목표를 제시한 ‘비전2030’으로 미래사회에 대비하고자 했다.
국가균형발전, 지방자치와 분권, 정부혁신을 본격화한 것도 참여정부였다. 또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균형적 실용외교, 협력적 자주국방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 및 안보환경을 개선하는 데 힘썼다.
신뢰와 교류협력의 대북정책 기조는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으로 이어졌다.
멀리 보는 시민, 책임을 다하는 시민, 행동하는 시민이 주권자입니다. - 2007.10.18. 혁신벤처기업인 특별 강연
사람을 위한 시장이 되어야 한다. 시장도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공동체를 파괴하는 시장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복지와 행복을 위한 시장이 되어야 한다. 그런 뜻에서 지금도 나는 방명록에 서명할 때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문구를 즐겨 쓴다. - 2007.10.15.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자이퉁(FAZ) 출간 『권력자들의 말』 기고문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 2007.6.16. 제8회 노사모 총회 축하 메시지
지역주의와의 싸움과 기회주의와의 싸움. 이것이 정치를 하는 동안 저에게 주어진 두 개의 큰 싸움입니다. 그래서 저는 ‘원칙과 통합’이라는 말을 계속하면서 대통령선거를 치른 것입니다. 저는 원칙에는 매우 까다롭게 매달리지만 통합을 위해서라면 어떤 다른 가치도 희생할 수 있는 정치를 해왔습니다. - <성공과 좌절> 147쪽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의 가치와 철학, 업적을 널리 알리고 발전시키기 위해 2009년 9월 23일 설립했다. 시민 한명, 한명의 자발적 후원으로 운영되는 비영리재단이자 공익법인이다. 2009년 10월 17일 첫 후원회원을 시작으로 2015년 5월 기준 4만3천여 시민이 후원하고 있다.
‘사람사는세상’은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사회, 사람이 사람 노릇하고 사는 사회를 꿈꿨던 노무현 대통령의 지향을 담고 있다. 노무현재단은 시민의 힘을 한데 모으고 참여의 장을 마련하는 다양한 사업으로 그 뜻을 이어가고 있다. 봉하마을 추모시설 운영과 대통령기념관 건립 추진을 비롯해 연례 추모기념행사와 사료편찬·연구 사업, 노무현시민학교를 통한 교육 사업, 연대·나눔·장학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경상남도 김해시에 위치한 봉하마을은 노무현 대통령의 생애와 꿈이 고스란히 담긴 장소다. 봉하마을에서 태어나 유년과 청년시절을 보낸 노무현은 퇴임 후 처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간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이 됐다. 전직 대통령 노무현은 봉하에서 생태농업과 살기 좋은 농촌 만들기, 민주주의와 진보를 주제로 한 연구·집필에 힘을 쏟았다.
봉하마을 대통령묘역에는 1만8천여 시민이 추모글을 새긴 1만5천개의 박석이 깔려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태어나 8살까지 살았던 생가와 퇴임 후 서거 전까지 생활했던 사저, 주요 유품과 기록을 볼 수 있는 추모전시 공간과 친환경 생태 공원, 산책로,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하천형 배후습지 화포천 등이 방문객을 맞는다. 2009년 서거 이후 연 73만여 명이 봉하를 방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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