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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참 맛을 보고 가세요.

 

저는 요즈음 하루에도 몇 번씩, 대문 앞에 나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힘들지만 반갑고 즐겁습니다.
그런데 참 안타깝습니다. 손님들은 봉하마을에 와서 저의 생가 보고, 우리 집 보고, 그리고 ‘나오세요.’ 소리치고, 어떤 때는 저를 한 번 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보지 못하고 돌아가십니다.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참 재미없겠다 싶은데, 그래도 손님은 계속 오십니다. 미안한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좀 더 재미를 느낄만한 우리 마을의 명물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봉하마을의 명물은 봉화산입니다. 봉화산에 올라가보지 않고는 봉하마을 방문은 헛일입니다.
봉화산은 참 아름답고 신기한 산입니다. 해발 150m밖에 안 되는 낮은 산이지만, 산꼭대기에 올라가 보면 사방이 확 트입니다.

멀리는 겹겹이 크고 작은 산이 둘러 있고, 그 안으로 넓은 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들 가운데로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을 볼 때마다 저는 손을 뻗어 잡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발 아래에는 손바닥 만한 작은 들이 있고, 그 들을 둘러싸고 옛날 아내와 함께 소설 이야기를 하며 걸어 다니던 둑길이 장난감 기차 길처럼 내려다보입니다. 당장이라도 내려가서 걸어보고 싶습니다.

동쪽으로 조금 멀리는 동양에서 제일 큰 습지라고 하는 화포천이 보입니다. 여기 저기 상처를 많이 입기는 했지만, 그래도 생태계의 신비함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누런 갈대만 보이지만, 봄이 되면 온갖 풀꽃이 파랗게 싹을 내고 색색의 꽃을 피웁니다. 그 중에서도 흐드러지게 핀 창포는 가슴을 들뜨게 만듭니다.

옛날에는 철새들이 하늘을 새까맣게 가릴 만큼 내려앉았던 곳입니다. 지금은 그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엊그제엔 기러기 몇 마리가 줄지어 날아가는 반가운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옛날의 그 오리, 기러기들을 다시 불러들이려고 합니다.

봉화산은 산이 높지 않고 능선이 부드러워서 산책처럼 등산을 할 수 있는 산입니다. 산이 크지는 않지만 제법 깊은 골짜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고, 산 능선에는 여러 군데 제법 너른 마당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고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습니다.
둑길을 걸어서 화포천까지 갔다가 들판을 한 바퀴 돌아오면 한 시간, 마애불을 거쳐서 봉화대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한 시간, 자은골로 걸어서 봉화대-관음보살상을 거쳐 도둑골로 내려오면 두 시간, 계속 걸어가서 재실 앞 낚시터를 거쳐 화포천까지 갔다 오면 두 시간, 화포천을 지나 뱀산을 돌아오면 세 시간, 이렇게 조금씩 욕심을 부리면, 1박 2일을 해도 모자랄 만큼 코스는 풍부합니다.

이 산책길에서 가끔 저를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고 하면 좀 더 재미가 있겠지요. 단지 대문 앞 관광만 하지 마시고 좀 더 재미있는 봉하마을 방문을 하시기 바랍니다. 한가지, 봉하마을 오실 때는 마음 놓고 걸을 수 있게 등산화를 신고 오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밥 먹을 곳도 없고 잠 잘 곳도 없어서 불편이 너무 많습니다만, 올 해 안으로 밥 먹고 잠 잘 곳을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내년, 내후년 계속해서 아름다운 숲, 자연학습 환경, 재미있는 운동꺼리 등도 마련할 계획입니다.
봉화산은 어릴 적 인근 10리 안에 있는 학교들의 단골 소풍 터였습니다. 앞으로 청소년들에게도 좋은 학습과 놀이터가 되도록 가꿀 생각입니다.
여러분이 봉화산을 많이 오르면 김해시에서 산을 가꾸겠지요. 여러분이 화포천을 많이 찾으면 나라에서 화포천 정화를 서두르겠지요.
오늘은 마을 사람들과 김해시 봉사단체들과 화포천 주변 청소를 나갑니다.

어제 김해시에서 연락이 왔더군요. 여러분의 방문이 김해시를 움직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드립니다. 김해시에도 감사드립니다. 저도 열심히 할 것입니다.
다시 글 올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8년 3월 6일 노무현

 

  • 노무현 대통령
  • 2008.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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