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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재단은 2010년 1월부터 노무현 대통령 생애 전반에 걸친 여러 자료들을 수집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통령 생전에 관계했던 분들의 구술을 채록하고, 사료에 대한 연구와 해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기록들을 매주 하나하나 꺼내어 소개합니다.


[사진] 촛불을 든 시민 노무현


지난 12일, 100만 촛불이 광장을 밝혔습니다. 국민이 주인임을 보여주는 민심의 행렬이 강물을 이루었습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최대라고 합니다. 광장에 나온 많은 시민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를 바로 쓰는 현장에 함께했음을 우리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촛불을 든 시민이었습니다. 작은 촛불이 혹여 꺼질세라, 손으로 감싸 쥐고 행진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사진은 남기수 전 글밭 대표가 기증한 소중한 사료입니다.

[촛불을 들고 행진하는 노무현 변호사와 시민들]

1열에는 사진 설명을 2열에는 사진을 넣으세요.
[촛불을 들고 행진하는 노무현 변호사와 시민들]

안타깝게도 사진이 찍힌 정확한 시기와 장소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왼편 가슴에 달린 검은색 리본에서 추모행사가 아니었을까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남기수 대표가 1985년 발족한 부산민주시민협의회(부민협) 활동을 계기로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촬영 시기는 그 이후일 겁니다. 주변 사람들의 옷차림이 겨울을 추측하게 합니다. 조금 더 추적해보면 1988년 12월 25일에 찍힌 사진 속 노무현 대통령의 복장이 해당 사료와 거의 유사하다는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의 추정으로 연보를 펼쳐 퍼즐을 맞추다보면 가장 근접한 결과로 다음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88년 02월 07일
어디(?)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 1주기 추도회에 참석하다.

물론 이는 추정일 뿐, 정확한 사실로 확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러한 결락을 메우는 일은 사료연구사업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관련하여 알고 있는 사실이 있으시다면 노무현사료연구센터로 이메일(archives@knowhow.or.kr)이나 전화(1688-0523/내선5번)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1987년 일어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은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사건입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2·7추도회 참석 도중 경찰에 연행되어 대공분실에 구금됐습니다. 검찰이 하룻밤 새 네 차례나 구속 영장을 청구한 사건은 결과적으로 인권변호사 노무현의 이름을 전국에 알린 계기가 됐습니다.

  • 노무현사료연구센터
  • 2016.11.16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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