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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노무현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다

[기증사료이야기2 최병두] 1983년 '노변'의 인감도장과 신고서

 

노무현 대통령은 1977년 9월부터 1978년 4월까지, 길지 않은 대전지법 판사 생활을 마치고 그해 5월 부산에서 변호사 개업을 합니다. 변호사 사무실은 서구 부민동에 자리 잡았습니다.
최병두 씨는 노무현 변호사 사무실에 1982년 8월 사무원으로 취업했습니다. 노무현 변호사의 부산상고 3년 후배이니, 서로 30대 초중반의 젊은 시절에 인연을 맺은 셈입니다. 이후 1989년 2월까지 사무장으로 재직하면서 ‘노변’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1988년 13대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입문하는 과정을 접했고, 그 시기 사무실 살림을 도맡았습니다.

 

인감신고 이전과 이후

최병두 씨는 2012년 2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쳐 노무현재단 사료편찬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한 구술 인터뷰에 참여하면서 그동안 소중히 보관해온 몇 가지 자료를 기증해주셨는데요, 하나는 노무현 변호사의 손때 묻은 인감도장, 또 하나는 부산지방변호사회에 제출한 인감신고서입니다.

노변의 서명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생년월일은 음력 생일로 기재했네요. 부산시 서구 부민동 2가 10의 19번지. 정확한 사무실 주소도 알 수 있습니다.

신고일이 1983년 8월 3일인데, 소송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의 신분 확인을 위해 그해부터 지방변호사회에 일괄적으로 인감을 신고·관리하도록 했답니다.

 

실제 사정은 그렇지만 지금 와서 보면 ‘변호인’ 노무현의 새로운 출발을 ‘신고’하는 기록처럼 느껴집니다. 1983년 8월 인감신고 이전에 1981년 9월 부림사건 변론이 있었고 인감신고 이후인 1984년, 1985년에는 노동법률상담소 개소, 공해문제연구소 이사,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등을 맡으며 민주화운동에 본격 투신하기 때문입니다.

최병두 씨도 구술인터뷰에서 재직시절 노변이 가장 인상 깊은 사건으로 꼽은 건 “뭐니 뭐니 해도 부림사건이었다”고 회고합니다. 노무현사료관에 공개한 구술영상에서 최병두 씨는 부림사건 이후 사무실에서 접한 노변의 면모를 이야기하는데요, 출근시간을 한 시간 당겨서 매일 아침 8시 직원들에게 직접 민사소송법을 가르치고, 법원을 상대하면서도 당당함을 주문했다고 합니다. 형사사건을 맡지 않으려고 했다는데 ‘변호사가 별로 해주는 건 없으면서 돈은 많이 받는다’는 게 이유였답니다.


그리고, 노무현과 문재인

구술영상에서 공개하진 않았는데요, 최병두 씨가 입사한 1982년은 문재인 변호사가 합류해 ‘노무현 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를 만든 해이기도 했습니다. 최병두 씨가 소개하는, 두 변호사가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당시의 에피소드입니다.

“1984년, 85년부터 변호사 사무실에 안기부 담당이 보초를 서다시피 했어요. 1986년, 87년 들어서는 시위가 있으면 못나가게 하려고 이 사람들이 아예 사무실까지 올라왔지요. 사실상 억류하려고 한 거죠. 그럴 땐 우리같은 직원들이 ‘안에 손님이 있다’고 안기부 사람들을 막아섰어요. 그렇게 페인트 모션(feint motion)을 쓰는 동안 노 변호사하고 문 변호사 둘이는 창문을 넘어서 시위 현장으로 가고 그랬습니다.”

소중한 자료와 함께 구술기록을 남겨주신 최병두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김상철/ 노무현사료연구센터
  • 2014.02.21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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