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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이야기 유의미한 주요 사료를 소개하고 그 배경과 맥락을 정리해 제공합니다.

대화와 중재위해 '정리해고태풍'의 눈으로 들어가다

[기증사료이야기1 현대자동차지부] 노무현부총재 1998년 8월 방문영상

 

지난해 12월 어느 날, 울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 지부 유헌철 영상부장이었는데요, 지부의 영상자료를 정리하다가 노무현 대통령 관련 영상테입을 찾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1998년 국민회의 부총재 시절 정리해고 문제로 현대자동차를 방문한 당시 영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올 1월 21일, 15분 남짓한 분량의 영상파일을 보내왔습니다.

정확한 날짜는 1998년 8월 2일로 되어있습니다. 그즈음 기사를 검색하면 노무현 부총재는 당 노사정지원특위 위원장 자격으로 7월 31일 현대자동차를 방문합니다. 3일 정도 머무른 셈인데요, 해당 영상은 노무현 부총재가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문제에 관한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강경진압 아닌 합의 강조하던 정치인

당시,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문제는 퍽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IMF의 구조조정 요구가 거셌고 그 여파로 현대자동차 사측은 1998년 6월 30일 무려 4,830명 정리해고 계획을 공식화합니다. 노조는 곧바로 시한부 파업에 돌입했고 회사는 7월 16일 사원 2,678명에 대한 해고 통보로 ‘응답’합니다. 조합원들의 고공농성, 회사의 휴업 결정 등 노사가 강경 대립하는 가운데 결국 사측은 7월 31일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은 1,569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강행합니다. 여기에 공권력 투입설까지 흘러나오는 등 긴박한 상황에서 노무현 부총재가 중재를 위해 울산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영상을 보면, 노무현 부총재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이 문제가 풀리는 것과 안 풀리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잘 알려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를 옮기다가 잠시 멈춰 서서는 기자들에게 강경진압이 아닌, 합의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합니다.

“아직도 싹 밀어버리고 법질서 얘기하는 부분도 있는데 제가 생각하는 법질서는, 정면도전하는 세력이 없는 법이 가장 합리적인 법입니다.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는 노동법이 나쁘다 옳다를 떠나서 우리사회 현실이, 법에 정면도전해 나가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법에 정면도전하는 사회세력이 존재할 때 그것은 정치력으로 반드시 풀어나가야 합니다. 모두가 법을 두려워하고 지켜야 한다는 명제에 대해 동의할 때라야 법은 법으로서 강행할 수 있는 정당성이 있는 것입니다. 정면으로 명분과 기치를 내걸고 한 사회의 중요한, 의미 있는 세력을 가진 집단이 법질서에 저항할 때는 되도록 정치가 먼저 나서서 이 법을 수용해나가야 한다는 것으로 합의를 이끌어가야 합니다. 그런 것이 정치이죠.”

영상 말미, 노무현 부총재는 건물을 나서면서 “부총재님 일하고 싶습니다, 일하게 해주십시오”라며 눈물로 호소하는 아주머니들과 마주칩니다. 정리해고 대상이 된 현대자동차 구내식당 아주머니들이었습니다. 노무현 부총재는 난감해하면서도 “여러분 말씀 다 잘 들었다, 제가 경솔히 얘기할 형편은 아니지만 희망을 가지고 협상이 잘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방문 이후에도 현대자동차 상황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8월 14일 회사는 결국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고 18일에는 이기호 노동부장관의 중재도 결렬됩니다. 노무현 부총재는 이날 당의 중재단과 함께 다시 울산으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6일간의 중재협상 끝에 8월 23일 277명 정리해고를 골자로 한 고용조정안 노사합의를 이끌어냅니다. 이때의 이야기는 자서전 <운명이다>에도 나옵니다. 제2부의 18장 ‘자동차 산업 살리기’(153쪽)가 그것입니다.

간이침대에서 잠 청하던 여당 부총재

월간 말 2002년 6월호에 실린 ‘부림에서 현대중공업까지-노무현 민주화 운동보고서’ 기사에는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당시 노조위원장이었던 김광식 씨의 회고가 들어있습니다.

“정치인 노무현의 분명한 한계는 집권 여당 정치인이란 사실이었다. 하지만 협상 당시에는 우려하고, 고민하고, 노력했던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중재단 대표인 노무현은 울산에 있는 동안 내내 본관 회의실에서 간이침대를 펴놓고 잠을 잤다. 여당 부총재에게 제공되는 편안한 잠자리를 거부했다.”

소중한 영상자료 기증해주신 현대자동차 지부에 감사드립니다.

 
  • 김상철/ 노무현사료연구센터
  • 2014.02.14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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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정말 감사한 님 그립습니다 윤종혁 2014-03-20 07:18:39

  • 이제는 너무 아련한 기억으로 남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투박한 정감이 넘치는 모든 말씀 조용한 행동 모습 너무 그리운 영상입니다 이재일 2014-03-25 11:02:54

  • 정말 귀한 자료네요. 감사합니다.. 박민호 2014-03-31 03: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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