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감독님. 영화 촬영영상을 기증해주신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사실 기획할 때부터 자료를 기증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전부 디지털·영상화 되는 상황에서 영상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차이가 크잖아요. 특히 (봉하마을에 건립될) 대통령기념관은 계속 업데이트 돼야 하는데, 영상 매체는 어떤 형태로든 멀티 유즈가 되니까 잘 활용되는 게 중요하죠. 안 그러면 박물관이 돼버리죠.
(기증하는 자료가) 유튜브 보듯이 재밌고 즐겁게 보고, 계속 확대 재생산되었으면 합니다. 이번 기증이 하나의 전통이 되면 좋겠어요.
<노무현입니다> 개봉이 2017년 5월 25일이었어요.
2002년에 시민들이 (노 대통령 당선이라는) 기적에 가까운 혁명을 일으켜냈는데, 그게 근과거에 있었던 일이니 우리가 마음을 결속하면 다시 이런 기적을 낼 수 있다. 그런 부분을 자극하고 싶었어요. 포인트는 대통령님에 대한 추모가 아니고 희망이었죠. 지금은 어두운 밤이지만 시민사회가 조금 더 움직이면 새벽을 만들 수 있다는 목적성을 가지고 있었죠.
기일이 있기도 하지만, 5월이 좋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제작 당시에는 12월이 대선이니까 각성한 시민들이 5, 6월 (대선 후보) 경선에서 제대로 된 후보를 뽑고 힘을 실어주는 데 촉매가 되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영화가 개봉 안 되더라도 재밌게 만들어서 많이 보게 만들자.
▲ 첨단영상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중앙대학교 연구실에서 만난 이창재 감독.
그때가 박근혜정부 3년 차였는데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영화 제작하고 나서는 좋은 일이 많았는데, 그 전까지는 변수가 너무 많았어요. 처음 시작할 때는 개봉이 안 되면 유튜브에 올리고 ‘숨어있자’ 정도가 목표였죠. 그냥 몇몇 사람 인터뷰하고 끝날 수 있는 프로젝트였으면 투자 없이 알음알음으로 가면 되는데, 그 당시를 재현하려던 상황이다 보니 자본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었어요.
그때가 제일 어려웠던 것 같아요. 예산을 확보하는 과정 자체가 독립운동처럼 조심스러웠고, 만드는 사람들이야 위해(危害)까지 각오하고 있는데, 투자를 하는 입장에서는 향후 운신에 문제가 있던 터라. 고백을 하면 사실은 다 입금을 안 했어요. 영화가 반이 진행될 때까지 단 한 푼도 안 들어왔어요. 촛불이 진행된 후에 첫 입금이 됐고. 영화는 잘 됐지만 스텝들한테는 소송이 걸릴 만큼 나쁜 상황이 계속됐죠.
마음고생이 크셨던 게 느껴집니다.
많은 독립영화를 만들었지만 저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식의, 예술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인생은 좀 희생되어도 된다는 예술지상주의적 사고를 매우 경계하는 입장입니다. 제가 희생할 수 있는 부분은 하면 되지만 각자 참여하는 스텝들의 온도가 다 다른데, 그냥 노동을 시켜놓고 나중에 (돈이) 없다고 하면...
투자 약속한 사람들이 투자서를 쓴 것도 아니고 다 구두로 했는데, 사라져 버리고 연락을 안 받고 할 때는 ‘나중에 법적인 문제가 되겠구나’ 좋은 뜻으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파산할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할 정도로까지 안 좋았어요, 심각하게.
어렵게 촬영한 영상을 기증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기사에서 ‘서거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을 처음 알게 됐다’고 말씀하신 걸 봤어요. 직접적인 만남이나 인연이 없었다고.
맞습니다. 그 전까지는 TV에서 조금 봤던 정도인데, 서거가 (저를) 각성시킨 거 같아요. 2002년 승리가 1차 각성을 하게 했다면 서거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새로 각성하게 됐고, 그 각성이 참 중요했던 거 같아요. 그 각성이 빠졌다고 가정하면 과연 촛불까지 이어졌을까.
노 대통령의 상실 그 자체가 우리 한 명 한 명에게 질문을 던진 거죠. ‘그분을 왜 보낼 수밖에 없었을까’ 또는 ‘참여정부를 왜 비난했을까’ 돌아보고 ‘올바른 시민사회란 무엇인가’까지 다 생각해보도록. 정치에 관심 없다던 많은 사람들을 깨어 있는 시민으로 한번 전환을 크게 시켜준, 당대에는 너무 충격이었지만 많은 이들을 퇴행하지 못하게 만든 그런 지점에 있지 않았나. 그 중의 한 사람이었던 거죠 저도. 그래서 노 대통령과의 진정한 만남은 그때 서거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감독님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미지는 뭘까요?
저는 (영화) 엔딩을 정해놓고 갔던 게, 많은 푸티지 중에 한 컷만 고르라면 이 컷을 고르고 싶다고 할 정도로 그 장면이 제일 강하게 남았어요. 그 장면이 사실 되게 깁니다. 실제 보여준 앵글은 17초밖에 안 되는데, 한 1분 30초를 반대 진영의 다른 당의 띠를 매고 있는 운동원들한테도 악수를 하고, 유권자가 아닌 고등학생들한테도 인사를 하면서 쭉 지나가요.
어떤 목적을 위해서 웃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들을 좋아하고, 자신은 아직 빛을 발하는 존재가 아니지만 누구한테든 다가가서 손을 잡고 싶어하는 면이 참 좋았어요. 당신의 표가 아니란 걸 아는데 마음을 계속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이 양반은 근본적으로 온기나 사람의 마음을 믿는 성선설을 가지고 있구나’.
▲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엔딩장면
작년에 <노무현이라는 사람>이라는 책을 내셨어요. 혹시 판매고를 여쭤봐도 될까요.
모르겠습니다. 많이 팔린 거 같지는 않아요.(웃음) 권투 선수가 링에 오르기 전에 체중 감량을 하듯이 영화에는 시간적 제약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넓게 펼쳐갈 수가 없습니다. 최대한 에센스만 뽑아야 되는데 때로는 에센스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맥락에 맞지 않아서 버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참 많았죠.
(대통령님) 아주 옆에 계시던 분보다는 못하겠지만, 책을 쓰면서 생각을 정립할 수 있었달까요. 노 대통령님이 이런 분이었고, 이래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더 나아가서 그 정신이 이어져야 될 이유가 이런 거구나. 그런 것들이 제 나름대로는 한 1년 작업하는 동안 명확해진 것 같아요.
그럼 감독님께서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전히 단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대통령님을 둘러싼 덕목의 폭이나 종류가 너무 다양해서 각자 보고 싶어하는 방향에서 보이는 지점들이 제일 많은 것 같고. 그런 맥락에서 개인적으로는 ‘온기’를 손꼽습니다. 진보운동이나 시민운동이 ‘사람사는 세상’, 더 살을 붙이면 사람의 온기가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가는 거지 어떤 이데올로기를 위해서나 아니면 이상 사회를 놓고 사람을 끼워 맞추려고 하는 건 아닌 거 같거든요. 정치인으로서 이런 온기를 가진 분이 참 드물었다. 나아가서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이만큼 풍요로운 온기를 가진 분들이 과연 몇 명이 있을까. 어느 단계를 넘어설 만큼 대단히 크게 가지고 있었던 분이 아닌가.
요즘 많이 느끼는데, 노 대통령님을 이야기할 때 ‘비판 정신’ 같은 걸 말하는 사람을 저는 못 봤거든요. 우리는 (그분의) 좀 더 긍정적인 면모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회가 어둡고 지쳐있을 때 노 대통령님의 덕목들이 더 빛을 발하지 않나. 다른 분들이 대통령님을 조명하더라도 그런 지점을 더 발굴해냈으면 하는 게 바람이에요.
요즘에는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서거 10주기와 관련된 계획도 궁금합니다.
극영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꼭 고집한 건 아닌데 실제 있었던 인물을 중심으로 노무현 대통령님의 시민의식이 구현된 이야기를 극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아마 연말쯤에 개봉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분의 정신이 책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삶 속에서 구현되고 있는 현재진행형 개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어떤 희망을 자꾸 이야기하고 싶거든요. 노 대통령님이 가진 가장 큰 덕목 중 하나가 희망, 낙관 그리고 현실에서 그것을 구현하는 역량- 이런 부분들이 컸던 것 같은데, 젊은 사람이나 자라는 사람이나 이 영화를 보여줌으로 해서 훨씬 강한 비판과 승리를 끌어내는 역량들을 키워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재단에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추모하고 기리는 부분에 있어서 그분의 정신들을 어떻게 일상에서 체화시키는가, 그다음에 어떻게 옆으로 자연스럽게 전파할 건가.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빠진다 하더라도 그 정신을 어떻게 유형에서 무형으로 가지고 갈 건지가 더 중요한 거 같아요.
10주년이라는 상징성은 물리적인 상징성인데 그거보다 더 큰 것은 그래서 다음에는 이 정신을 전파하는데 어떤 비전을 제시할 건가. 그게 노무현재단이든 기념관이든 일을 하는 분들의 목표여야 하지 않을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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