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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이발사 부자(父子)와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이발

"훈훈한 옆집 아저씨 같던 분, 행복하십시오"

 

부산 동구의 판자촌을 배경으로 숱 많은 머리의 한 사내가 열중 쉬어 자세로 서있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사용한 선거명함 사진 속의 노무현이다. 문재인 의원이 TV 예능프로그램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노무현 대통령 사진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정치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그 씩씩한 더벅머리도 좀 다듬어야 했을 터. 그렇게 노 대통령과 어느 이발사 부자(父子)의 대를 이은 인연이 시작됐다.

1988년, 아버지의 첫 이발1988년 선거기간 중 노무현 후보는 부산역 앞 광장호텔 이발소를 찾았다. 당시 3급 정도의 소박했던 광장호텔 구내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던 이는 신영호 이발사였다. 노무현 후보가 처음 이발소에 들렀을 때는 누구인지도 몰랐다.



노 후보의 모발은 굵은 직모(直毛)로, 뻣뻣한 편이었다. 별다른 주문은 없었지만 ‘크게 되실 분’이라는 생각에 잔뜩 긴장하고 빗질도 조심스럽게 했다. 정작 노 후보는 머리를 맡기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를 시작으로 노 대통령은 신영호 이발사의 단골이 됐다. 이발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도 나눴다. 노 대통령이 “우리나라가 잘 되려면 시민이 깨어있어야 한다”고 하면, 신영호 이발사는 “맞는 말”이라며 “당만 보고 찍으면 안 된다”고 화답했다. 롯데호텔이 지금의 부산 서면에 본점을 내던 1995년, 신영호 이발사는 롯데호텔 6층으로 이발소를 옮겼다. 2002년 어느 날 노 대통령이 이발소를 찾았다. 1988년 처음 만났던 국회의원 후보 노무현은 이때 대통령 후보 노무현이 되어있었다.




“머리를 빡빡 깎으면 어떨까?”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재임기간 중에는 당연히 청와대 전속 이발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노 대통령과 만남은 퇴임 후에 다시 이어졌다. 노 대통령이 퇴임한 2008년 신영호 이발사는 아들 신은수 씨와 함께 봉하마을을 찾았다. 신은수 씨는 미용학과 교수로, 1997년부터 아버지와 함께 부산 롯데호텔 이발소를 운영해왔다. 노 대통령은 부산의 이발사 부자(父子)를 반갑게 맞았다.




아들 신은수 교수는 6월항쟁이 한창이던 198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부산 남포동 거리의 아스팔트 위에서 노 대통령을 처음 봤다. 봉하마을을 찾아 인사하던 날 그 이야기를 꺼냈더니 노 대통령이 “그래? 어디 있었어?” 하며 웃더란다. 이렇게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노 대통령의 이발사가 됐다. 처음 몇 달간은 신은수 교수가 봉하마을로 출장 이발을 갔다. 사저에 마련된 두 평 남짓 작은 공간에서 이발을 했다. 처음 이발하던 날, 뜻밖에도 노 대통령은 ‘머리를 빡빡 깎으면 어떻겠느냐’고 했다고 한다. 가뜩이나 긴장한 첫 이발인데, 신은수 교수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나중엔 노 대통령이 직접 부산 롯데호텔 이발소로 찾아왔다. ‘행복한 공간’이라는 친필 사인도 받았다. 반듯한 표구 액자에 넣어 삼랑진 집에 걸어두었다. 아버지와도 그랬듯이 노 대통령은 이발하는 중에 아들 신은수 교수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어떤 얘기를 했을까.




2009년, 아들의 마지막 이발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2009년 5월이 왔다. 이미 온갖 보도가 검찰 발(發)로 지면과 화면을 채우고 봉하마을에는 온통 카메라가 진을 치던 때였다. 상황이 그러한 터라 신은수 교수가 봉하마을로 이발을 하러 갔다.


 

서거 9일 전, 2009년 5월 14일이었다. 그렇게 노 대통령은 정치를 처음 시작한 1988년부터 알아왔던 이발사의 아들에게 마지막 이발을 하고 자신의 아들의 이발도 부탁했다. 조용한 이별이었다. 아버지 신영호 이발사는 “죽어서도 그분의 유권자가 되어야지요”라고 했다. 아들 신은수 교수는 “좋은 옆집 아저씨 같았던 분, 행복하십시오”라고 했다. 노 대통령과 인연에 대해 부산의 이발사 부자(父子)가 남기고 싶은 말이었다. 행복하십시오.


 

1988년 첫 선거 명함사진 속의 노 대통령

 

  • 김상철/ 노무현사료연구센터
  • 2013.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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