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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지상주의’ 깨고 ‘복지투자’ 새길 열다

참여정부 복지사회정책…한 세대 앞 내다보며
골고루 잘 사는 국가발전전략 제시

 


퇴임을 앞둔 2008년 1월 3일 마지막 신년인사회 연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복지 투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복지를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갈라먹자, 그것이 복지 아니냐. 그러면 경제는 망한다’ 이런 논리들을 가지고 복지를 핍박합니다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복지는 성장과 선순환 하는 것이고 장기적으로 보면 경쟁력의 밑천이다. 사람이 밑천이니까, 복지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니까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복지를 위해 5년 내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복지 잘한다고 칭찬해 주는 사람 없고 분배정부 한다고 타박만 죽어라고 받았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복지제도가 이제 기틀이 잡혔습니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에는 복지에 관한 인식과 철학, 정책 추진과정이 압축적으로 담겨있다. 참여정부는 복지 분야 예산을 정부예산 평균 증가율 11%의 약 두 배에 달하는 20%씩 매년 증가시켰다. 사회복지를 사람에 대한 투자, 곧 미래를 위한 사회적 투자로 인식하고 실천한 결과다. 이를 구현하는 방식은 재정혁신의 일환으로 도입한 톱다운(Top-down) 예산편성제도였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국가재원배분회의를 통해 각 부처의 1년치 예산 총액을 정하고 구체적인 사용처는 해당 부처가 자기 책임 아래 자율적으로 편성하도록 한 제도다.


사회복지투자 매년 20% 증가…최초로 경제예산 넘어서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과거 정부의 예산 편성방식은 일종의 밀실주의였다고 설명한다. 최종 결정권은 기획예산처와 청와대가 쥐고, 각 부처는 예산처를 상대로 자기 부처 예산을 늘리기 위해 로비하는 방식이었다는 것.

“이 같은 방식을 혁신해서 장관들 다 부르고 청와대 수석들도 머리를 맞대고 1박2일로 예산을 배분하는 회의를 한 겁니다. 이틀간 토론해서 어떤 예산은 늘이고 어떤 예산은 줄이고 이렇게 방향을 정했죠. 그렇게 하니까 사회정책 쪽의 예산이 늘어나고 경제 쪽의 예산은 줄었습니다. 그전에는 항상 경제예산이 우위이고 복지예산이 그 밑에 따라가고, 양적으로 그럴 뿐만 아니고 부처의 힘이나 발언권도 사회 쪽은 열세에 있었단 말이죠. 그게 달라졌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참여정부는 복지예산 비중을 2003년 20.2%(41조7천억 원)에서 2008년 29%대(67조7천억 원)까지 늘렸다. 이정우 전 실장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 있는, 획기적인 일”로 평가한다.


그렇다면 복지예산만 늘리고 경제는 도외시한 것일까? 앞서 인용한 발언처럼 노 대통령은 복지를 성장과 선순환관계이자, 장기적으로 ‘경쟁력의 밑천’이라고 봤다. 사람에 대한 투자, 복지야말로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한 성장전략이라는 것. 이를 통해 국민의 기본적인 복지 수요를 충족하고 재기와 재활의 기회를 보장하고자 했다. 참여정부가 기초생활보장제도 내실화, 근로장려세제(EITC) 시행, 사회적 돌봄서비스 확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기초노령연금 도입 등을 비롯한 빈곤층과 장애인, 노인, 아동보육 지원에 힘을 쏟은 이유다. 일례로 참여정부는 2300억 원 정도였던 아동보육(육아지원) 예산을 2조700억 원까지 끌어올렸다.

보육지원 강화나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기초노령연금 도입 등은 특히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시급한, 그만치 다각적이고 압축적인 대응이었다. 출범 첫해인 2003년 7월 발표된 2002년 출산율 1.17명, 이른바 ‘1.17쇼크’가 그런 대응을 촉발했다.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양극화·민생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던 이혜경 연세대 교수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참여정부의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퍼주기 복지’ 시비 뚫고 사람에 대한 투자 지속 강화익히 알려진 대로, 복지 확충에 대한 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당시 야당이나 일부 언론에서는 복지는 한번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이 중독된다고(2007년 4월 27일 조선일보 사설), 국가에 의지하는 병든 인간을 만든다고(2006년 9월 5일 중앙일보 칼럼) 경고했다. 세금으로 퍼주기 하고 있다며 ‘약탈정부’(2006년 7월 28일 동아일보 칼럼)라고 성토했다. 김용익 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은 이 같은 지적의 허황됨을 비판하며 복지는 투자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GDP 대비 복지재정은 8%대에 머물러있다. 그나마 복지를 포함한 사회투자를 대폭 강화한 참여정부에서 나온 성적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수준이다. 이는 OECD 평균 2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하위권. 복지투자에 대한 비난은 배곯는 사람에게 비만의 부작용을 경고하는 꼴이었다. ‘복지 후진국’에서 찾은 비전이 바로 2006년 8월 발표한 정부 최초의 장기 국가발전전략 '비전 2030'이다. 성장과 분배가 함께 가는 동반성장을 지향하며 제도혁신을 전제로 복지투자를 확대, GDP 대비 복지재정은 2020년에 2001년 OECD 평균(21.2%)에, 2030년엔 25% 수준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용익 전 사회정책수석의 설명이다.



묻혀버린 국가발전전략 ‘비전 2030’…“한국적 복지국가의 길”
김용익 전 수석의 설명대로 ‘비전 2030’은 성장과 복지를 동전의 양면관계로 보고 복지정책을 성장전략의 하나로 접근, ▲성장동력 확충 ▲인적 자원 고도화 ▲사회복지 선진화 ▲사회적 자본 확충 ▲능동적 세계화 등 5대 전략으로 정리했다. 5대 전략은 50대 핵심과제로 나눠지고 이를 실현할 수단으로 제도혁신과 선제적 투자를 상정하고 있다. 그렇게 잡은 목표가 2020년에 복지재정은 2001년의 OECD 평균 수준, 1인당 GDP는 2020년에 2005년의 미국 수준인 3만6천 달러, 2030년에 2005년의 스위스 수준인 4만9천 달러에 이른다는 것. 어찌 보면 대단히 ‘보수적인’ 목표였다. 정부 최초의 장기 국가발전전략이자 재정운용계획이었던 ‘비전 2030’은 그러나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다. 선거용 정부 발표로 치부하거나 ‘소설 같은 전망’이니, ‘근거 없는 장밋빛 전망’이니 하는 비난이 돌아왔다. 양극화·민생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던 이혜경 교수는 그 같은 반응이나 무관심을 아쉬워하며 ‘비전 2030에 한국적 복지국가의 길이 있다’고 강조한다.


노 대통령도 ‘비전 2030’에 대한 아쉬움을 자주 피력했다. 2008년 1월 신년인사회에서는 “어떻든 이 문제에 관해서 국가적으로 큰 토론을, 지금부터, 앞으로도 10년 이상 계속해서 이 문제에 매달려서,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서 의제로 삼아야 하고 국민적으로 토론을 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아쉬움은 ‘비전 2030’에 국한하지 않는다. 퇴임 후에도 복지예산 확충을 두고 ‘더 늘려야했다’고 언급했듯이, 노 대통령이 보기에 복지를 비롯한 사회투자는 대한민국이 꼭 붙잡고 가야할 중요한 국가발전전략이었다.

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난, 최초의 장기(長期)주의 대통령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인식과 철학을 두고 이정우 전 정책실장은 단기실적에 연연하지 않은 최초의 장기(長期)주의 대통령이자, 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성장과 복지,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추구한 첫 대통령으로 평가한다.


끝으로, 이정우 전 정책실장이 말한 복지와 분배의 가치를 2008년 신년인사회 연설에서 노 대통령은 이렇게 설명했다. 쉽게 풀어낸 길지 않은 비유 속에 참여정부의 지향이 담겨 있다.

“복지, 그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는지 사람들이 대개 관심이 없습니다. 밥만 많이 먹고 힘만 세지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피돌기’가 잘돼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배만 불룩하게 나온다고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고, 머리만 커진다고 건강한 것이 아니라 ‘피돌기’가 잘되고 온 몸이 균형 있게 발전해야 그것이 건강한 경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 김상철/ 노무현재단 사료편찬특별위원회
  • 2012.06.26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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