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부림사건 변론과정에 대한 고호석 씨 구술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형태별 사료-구술-등록번호 60301 60302] 노 대통령이 저서 <여보, 나 좀 도와줘>에서 “내 삶에서의 가장 큰 전환점”이라고 꼽았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든 ‘노변’은 어떻게 ‘노동 전문변호사’가 됐을까요? 그 출발점이 이재영 씨의 구술에 담겨있습니다. 구술자 이재영은 노무현 변호사가 처음 맡은 노동사건으로 알려진 ‘세화상사’의 해고자였습니다.
부산 사상공단의 중소기업 세화상사는 1985월 2월 1일 노동조합을 결성했으나 사측의 방해로 대량 해고자가 발생했습니다. 노동자들은 노무현 변호사를 찾아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일련의 소송을 제기하며 복직투쟁을 벌였고 이 과정에 사측은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공단 내 재취업을 방해하는 한편 최종 폐업신고 처리 협박 등으로 강경하게 맞섰습니다.(부산민주운동사편찬위원회, <부산민주운동사 3>) 이재영 씨가 첫 만남에서 노동자들의 현실을 설명하자 노 변호사는 ‘사람 사는 곳인데 그럴 리가 있나’라며 쉬이 믿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동법을 본격적으로 공부합니다. 구술의 한 대목입니다.
"노동조합법 상 부당해고, 부당정직 문제 이런 것들에 대해 본인이 해줄 수 있는 거는 법률적인 대응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잘 모르니까 공부를 좀 해봐야겠다’ 그래서 ‘우리가 돈이 없습니다’ 하니까 ‘돈은 뭐 됐고’ 이러면서 (사건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노동부에 진정서를 넣고 법원에 임금지급 가처분신청, 부당해고 효력중지 가처분신청 하여튼 이름도 괴상망측한 그런 가처분신청들을 책에서 봐갖고 될 만한 거는 소송을 다 걸었다 그럽니다. 우리는 잘 모르죠, 그런 거. 하여튼 (노 변호사는) 공부하고 싶은 대로 다했다 그럽디다, 그때. 노조 결성과 관련돼서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은 그때 공부를 다 하셨어요."
이재영 씨는 변론 외에도 부산 가야동의 해고자들 거주지를 자주 찾아가 함께 막걸리를 마시고, 회사 사장을 직접 만나 싸우기도 하고 대화하기도 했던 노 변호사의 면모를 이야기합니다. 노동자들과 긴 인연의 시작, 이재영 씨의 구술을 통해 만나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