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2012년 8월 6일 노무현재단 사료편찬특별위원회와 가진 2차 구술 인터뷰에서 회고한 내용입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의 인터뷰를 정리한 책 《안희정과 이광재》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원외정치인이던 1993년 3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연소 최고위원으로 선출되고, 같은 해 9월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설립합니다. 안희정 지사는 이듬해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사무국장으로 합류하면서 처음 노 대통령과 함께 일합니다. 당시 안 지사는 노 대통령에게 때로 연구소 사무실에서, 때로 점심을 먹은 뒤 사무실 주변을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고민을 토로하고 토론하기도 했답니다.
안 지사는 어느 날 노 대통령과 대화에서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의 한 대목을 꺼냈습니다. 어린 빨치산이 염상진에게 묻습니다. ‘인민을 해방시킨다면서 남의 무밭에서 몰래 빼먹고 남의 집 음식도 훔쳐 먹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나는 이런 군대인지 몰랐다.’ 그러자 염상진이 답합니다. 사회주의 혁명이 위대한 것은 그렇게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여서 완전한 사회를 구현해내고자 하기 때문이라고요.
안 지사의 구술을 잠시 인용합니다.
“그래, 그 말도 맞구나. 이해는 하지만 그게, 내 마음에 답이 못됐어요. 인간 개개인이 불완전한데, 그런 인간에 대한 실망과 좌절 속에서 연대를 하고 조직을 만든다고 어떻게 역사가 좋아질 수 있겠냐는 말이죠. 근데 그 답을 노 대통령이 줬어요.”
이때의 이야기를 안 지사는 노 대통령의 ‘어록’으로 인상 깊게 기억합니다.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런 말 있잖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개체로서의 인간은 변하지 않는단 말이야. 하지만 류적(類的) 존재로서의 인류역사는 늘 진보해왔다고. 그게 참 신기하지 않아? 그러니까 역사의 전진을 믿는 자, 인류의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게 진보주의자 아닐까.”
퇴임 후인 2008년 6월 7일 전국 노사모 총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안희정 지사
그럼에도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 역사에 대한 진보적인 태도. 노 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이런 신념과 태도를 견지해왔고 대통령이 된 후에도, 퇴임 후에도 그러했습니다. 앞서, 12월 20일 사람 사는 세상에 올린 메시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07년 10월 12일 독일의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 출판부가 《권력자의 말》이란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 실린 노 대통령의 기고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역사는 진보한다. 이것이 나의 신념이다.”
2007년 6월 8일 원광대학교 특강에서 노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거론하면서도 “민주주의의 장래는 여전히 민주주의”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에 완결은 없을 것입니다. 역사에는 완결이 없기 때문입니다.”
퇴임 후 출간한 《진보의 미래》에서 이런 대목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였을 것입니다.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인간이 소망하는 희망의 등불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이상(理想)이란 것은 더디지만, 그것이 역사에서 실현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가는 것이다.”
18년 전, 원외정치인이었던 당시의 생각과 다르지 않은 거 같습니다. 요즘 같은 때에 그의 일관한 믿음과 신념을 곱씹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개체로서의 인간은 변하지 않는단 말이야. 하지만 류적(類的) 존재로서의 인류역사는 늘 진보해왔다고. 그게 참 신기하지 않아? 그러니까 역사의 전진을 믿는 자, 인류의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게 진보주의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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