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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이야기 유의미한 주요 사료를 소개하고 그 배경과 맥락을 정리해 제공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행정수도 건설을
결심하게 된 사연 ②


"한계에 부딪힌 수도권 집중 억제와 낙후된 지역 경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 청와대와 중앙부처부터 옮겨가겠습니다. 수도권 집중과 비대화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국가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2002. 09. 30. <새로운 시대, 당당한 나라. 노무현이 시작합니다:
제16대 대통령선거 새천년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역대 대통령들 모두가 공감했던 행정수도 이전

행정수도 이전의 필요성을 처음 제기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었습니다. 경제발전이 이루어지던 1970년대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서울 인구 통제의 필요성은 반세기에 걸친 논란거리였습니다. 1971년 김대중 신민당 대선 후보가 ‘대전 행정 부수도’ 공약을 제시한 이래 역대 대통령들과 대선 후보 대부분이 행정수도 이전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행정수도 이전 계획을 최초로 이행했던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1977년 2월 10일 서울시 연두순시 과정에서 서울의 인구 억제와 북한으로부터의 위협 방지를 위해 임시행정수도 건설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이후 관련 법 제정, 전담기구 설치, 대규모 연구사업 진행, 도시계획수립 등 급속하고 전방위적인 임시행정수도 건설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으로 중단된 행정수도 이전 계획은 이후 20여 년간 답보상태에 있거나 지엽적으로만 추진되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 당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의 불씨를 되살리게 된 것입니다.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분이 행정수도 이전을 시도한 것은 사리사욕이 아니라 국가의 장래에 대한 지도자로서의 안목을 가지고 한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2005.03.22.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행정수도 건설을 결심하게 된 사연>


행정수도 이전을 최초로 제안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 계획하에 수도 이전 구상을 실천으로 옮기고 제도적 기틀을 마련한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이루어져왔습니다. 과거와 같이 제왕적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에도, 5년이란 제한된 시간만이 주어졌음에도 각고의 노력과 진정성으로 행정수도 이전의 실현 가능성을 증명했습니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요?



"명운을 걸고" 추진하고자 했던 계획


2002년 9월 30일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가 발표한 행정수도 이전 공약에 대해 수도권의 표심이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 선거는 승패도 중요하지만 국가 발전에 꼭 필요한 의제를 국민에게 제출하는 기회”(<운명이다> p.229)라며 소신을 지켜나갔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노무현 후보를 선택했습니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 약 1년 동안 신행정수도 이전 계획은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지원단이 발족되고 중앙정부 18부 4처 3청 등 74개 기관을 이전 대상으로 선정,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포함한 균형발전 ‘3대 특별법’이 공포되며 행정수도 이전 및 이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균형발전 방안들이 모습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순항 중이던 행정수도 이전 계획은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국회에서 압도적인 찬성을 받으며 통과된 ‘신행정수도특별법’에 제동이 걸리게 된 것입니다. 2003년 12월 29일 이 법안은 여야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었으나, 2004년 4월 총선 이후 한나라당의 입장 번복으로 난관에 부딪히게 됩니다. 2004년 6월 정부가 구체적 이전 대상 기관을 발표하자 한나라당은 행정수도 이전은 선거용으로 급조된 것이라며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야당과 일부 언론의 공세로 여론이 악화됨에도 불구하고 행정이전 수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노 대통령은 2004년 6월 15일 국무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힘주어 말합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추진돼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게 이 정책은 우리 정부의 핵심적인 과제이고 참여정부의 아주 중대한 정책과제의 하나이기 때문에 정부의 명운을 걸고 진퇴를 걸고 반드시 성사시켜 주시도록 그렇게 각별히 부탁을 드립니다. 그런 각오로 국민들을 설득하고 국민적 합의를 다시 되살려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2004.06.15. 국무회의 발언



신행정수도특별법, ‘관습법’을 이유로 위헌 판결


[출처: <금강일보> 2020년 8월 2일 자 기사 “반세기에 걸친 이슈, ‘행정수도 이전’”,  <한겨레 21> 2020년 7월 25일 자 기사 “노무현의 꿈 행정수도 이전, 국민들은 지지한다”에서 발췌]

2004년 7월 12일, 서울시의원·교수·공무원 등 169명으로 구성된 청구인단이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확인 헌법소원을 제기하기에 이릅니다. 헌재는 ‘관습법’을 이유로 재판관 8대 1의 의견하에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판결을 내립니다.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조선왕조 이래 600여 년간 오랜 관습에 의해 형성된 관행이므로 관습헌법으로 성립된 불문헌법에 해당”하며, 개헌이나 국민투표가 필요함에도 그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행정수도 이전 계획이 어려워진 이후 충남 연기군 일대에 행정기구 일부가 이전하고 교육·과학·문화 기능을 갖춘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안 및 ‘행정도시특별법’이 제안됩니다. 반대세력들은 이번에도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헌재가 소송을 각하함으로써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이 추진됩니다.

이후 3년 여간 이전 대상 공공기관 선정, 혁신도시 지정, 관련 법안 마련, 민간부문 이전을 위한 유인책 및 정책 준비 등의 과정 끝에 2007년 7월 20일 행정중심 복합도시 ‘세종시’ 기공식이 열립니다. 기공식 축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여전히 남은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균형발전이 수도권과 지방 모두의 경쟁력을 함께 높이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행정수도가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축소된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청와대와 정부, 정부 부처 일부가 공간적으로 분리되게 된 것은 업무효율 상으로도 매우 불합리한 결과입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꼭 행정수도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정부부처는 모두 이곳으로 오는 것이 순리입니다.”

2007.07.20. <행정중심복합도시 기공식 축사>




남은 과제, 노무현 대통령의 당부




임기 후반을 맞은 대통령은 여러 자리를 통해 남은 과제와 당부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행정수도 이전과 폭넓은 균형발전이 아닌 일부 공공기관의 이전만으로는 수도권 인구 집중문제를 근원적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시민들이 남은 과제를 이어가 줄 것도 함께 부탁했습니다.

“아직도 균형발전이 갈 길은 멉니다. 시간도 5년은 너무 짧습니다. 우리나라가 수도권으로 집중되고 전국토로 봐서 이처럼 심각한 불균형이 생길 때까지 약 40년의 집중이 있었습니다. 모이기는 쉬워도 분산하기는 어렵습니다. 40년 걸렸으니까 분산은 아직도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른바 백년대계를 가지고 균형발전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행정수도를 반대했던 사람들이 처음에 행정수도를 반대하다가 나중에 행정복합특별도시로 일부라도 내려오는 쪽으로 하니까 이전보다 분할이 더 나쁘다,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아무리 공공기관이 이전하고, 지역대학 산학연 클러스트를 만들고, 대학교가 혁신하고, 기업이 혁신하려고 해도, 좀 더 많은 기업이 오지 않고 따라서, 그 기업을 따라서 좀 더 많은 사람이 오지 않으면 지역발전은 대단히 더디게 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2007.10.24. <태안 기업도시 기공식 축사>


“균형발전 정책은 앞으로 위축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멈추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또 더 심하면 되돌아 갈 수도 있습니다…. 이제 국민 여러분께서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이 정책을 꼭 지키겠다고 마음먹으면 지킬 수 있습니다.”

2007.09.12. <제주 혁신도시 기공식 축사>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바람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뒤를 이어 취임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세종시 수정안인 ‘세종시 발전방안’을 제안합니다. 비효율과 비용문제를 이유로 세종시의 행정기능을 제외하고 기업·교육도시로 만들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균형발전의 목표를 제외시킨 개발 위주의 도시 계획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10년 6월 29일 수정안은 국회에서 부결되었고, 세종시는 원안대로 추진되었습니다. 2019년까지 수도권 153개 공공기관이 지방 이전이 마무리되면서 균형발전을 위한 첫 단추는 채워졌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아쉬움으로 남았던 행정수도 이전은 여전히 큰 진척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금 한국 사회의 ‘핫이슈’로 떠오른 행정수도 이전.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행정수도 이전의 흔적 그리고 그의 당부와 과제는 2020년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 강성민/사료콘텐츠팀
  • 2020.09.22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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