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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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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앞에 놓인 ‘여덟 개의 산(山)’

- [사료이야기] 필명 ‘노공이산’에 새긴 꿈

노무현 대통령의 필명은 ‘노공이산(盧公移山)’이다. 중국 전국시대 도가(道家) 사상가인 열어구(列禦寇)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도가 계열의 고전 문헌 「열자(列子)」의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에 노 대통령은 성 씨인 ‘노(盧)’ 자를 붙여 필명을 지었다. 우둔(愚)해 보이는 노인(公)이 남들의 흉을 마다하지 않고 산(山)을 옮기려고(移) 한 끝에 결국 목적을 이루었다는 뜻이다. 남들이 보기엔 무모해 보여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결국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비유로 쓰인다. 


- 2008년 3월 2일 봉화산 등산. 방문객들을 향해 모자를 벗어 흔드는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 ‘노공이산(盧公移山)’이라는 필명을 쓴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노공이산’은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과 달리 필명의 역사는 비교적 짧다. 처음 쓰인 것은 대통령 퇴임 뒤 봉하마을에 귀향해 한 달여가 지난 2008년 3월 27일의 일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 ‘사람사는세상’ 홈페이지에 “회원 게시판은 30,000번째 글이 가까워지고 있네요”라는 제목의 글에 근황을 전하면서 끄트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저도 필명을 하나 지었습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으로 하려고 했는데, 선점한 임자가 있어서 ‘노공이산’으로 밀렸습니다.”


- 2003년 6월 2일 참여정부 출범 1백일을 맞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연설 중인 노 대통령.

2003.06.02. 참여정부 출범 100일 기념 기자회견
하지만 필명의 기원이 되는 ‘우공이산’은 참여정부 기간 내내 노 대통령 국정철학의 크나큰 뿌리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기록상으로 노 대통령이 ‘우공이산’을 처음 언급한 것은 참여정부 출범 100일을 기념해 열린 2003년 6월 2일 기자회견에서다. 노 대통령은 국정의 중심을 경제 안정, 특히 부동산 가격 안정을 비롯한 서민 생활 안정에 두겠다고 약속하면서 ‘우공이산’이란 말을 덧붙였다.

“거창한 약속이나 구호보다 한 걸음, 한 걸음 목표를 달성해 가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심정으로 국정운영에 임할 것입니다. 자신 있게, 끈기 있게 나아가겠습니다.”


- 2004년 8월 17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기자협회 창립 40돌 행사. “언론이 과거 박해에 맞서 싸울 때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며, 스스로의 절제로 권력을 남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진정한 싸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다.

2003.06.19. 언론사 특별 기고문
머니투데이 창간 2주년 특별 기고에서는, 대한민국의 산재한 많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노무현과 대한민국에 투자하십시오. 노무현도 대한민국도 절대 불안하지 않습니다. 새 시대를 향한 국정운영의 방향과 대한민국의 비전이 너무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중략)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심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5년을 쉼 없이 가겠습니다. 자신 있게 가겠습니다.”


- 2004년 1월 10일 청와대비서실 직원 연수에서 ‘스스로의 변화와 혁신을 통해 국민과 소통하여야 합니다’를 주제로 강연을 하다.

2004.01.10. 대통령비서실 직원 연수 특강
참모들에게도 ‘우공이산’의 정신으로 국정운영에 동참해 주기를 강조한 바 있다. 다음은 2004년 1월 10일 경기 분당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에서 열린 ‘대통령비서실 직원 연수’ 특강의 한 구절이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성어처럼 우리가 길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칠 때 87년 6월이 오거나 성공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추진하면 세상은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 신영복 선생의 서예 작품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글귀를 살펴보는 노무현 대통령.

신영복과 노무현의 ‘우공이산’
‘우공이산’의 좌우명은 신영복 선생과의 만남에서도 인연이 닿았다. 대통령 퇴임을 5개월여 앞둔 2007년 10월 13일, 노 대통령은 부산상고 선배인 신영복 교수와 만찬을 함께 했다. 이날 신영복 교수는 직접 쓴 글 ‘우공이산(愚公移山)’을 노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2007년 11월 3일 노 대통령은 퇴임 후 활동에 대해 윤태영 비서관과 의논하면서 출판사 명칭 등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오상호 전 대통령비서실 제2부속실장이 「알릴레오! 노무현」을 통해 소개한 일화다.

- 청와대 복도를 함께 걸으며 웃음을 나누는 노 대통령과 참모들. 권위보다 소탈함이 먼저였던 일상의 한 장면.

노 대통령 : “내가 그동안 얼마나 생각을 많이 했겠어요? 책, 도서 출판, 책방을 하든지…‘책방, 사람사는세상’으로 하면 되겠어요.”
윤태영 : ‘사람사는세상’은 출판 분야에 먼저 등록한 사람이 있습니다.
노 대통령 : “영 안 되면, 신영복 선생이 우공이산이라는 글을 하나 써줬는데요. 그래, 그것으로 하면 되겠어요. ‘우공이산’ 넉 자를 쓰든지 아니면 ‘우공’으로….”

‘여덟 개의 산(山)’을 허무는 사람
노 대통령은 왜 하필 ‘우공이산’, ‘노공이산’이라는 이름에 마음을 두었을까? 답은 그가 남긴 말 속에 있다. 재임 5년 동안 연설과 기고, 서신에서 그는 옮겨야 할 산의 이름을 여러 번 직접 불렀다.

첫째, 지역주의의 산. “지역 구도의 문제는 나라 발전에 큰 걸림돌입니다.” 2005년 7월 국민에게 보낸 글에서 그는 취임 후 첫 국회연설을 다시 꺼냈다. 국회가 지역구도 해결에 동의하면 “대통령이 가진 권한의 절반 이상을 내놓을 용의도 있다”고 했던 연설이다.

둘째, 권위주의의 산. “억압하고 배제하고 일방통행하던 권위주의 시대의 낡은 생각과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2004년 5·18 기념사) 2년 뒤 광복절에는 “권위주의는 해체되고, 국민이 진정한 주인 대접을 받는 시대로 들어섰습니다”라고 말했다.

셋째, 중앙집권의 산. “중앙 집권과 수도권 집중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습니다.” (2003년 취임사) 우공이산을 다짐한 2003년 6월 머니투데이 기고도 같은 진단에서 출발한다. 그는 이 기고에서 문제의 근원을 “50여년 지속되어온 권위주의적이고 중앙집권적인 정치”로 꼽았다.

넷째, 기득권의 산. “세상이 변화할 때는 변화를 수용할 줄 알아야 하고, 기득권을 버려야 할 때는 기득권을 버려야 합니다.” (2004년 연세대 강연)

다섯째, 분단의 산. “저는 오늘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었습니다. 평화와 공동 번영에 대한 우리 겨레의 염원을 담아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2007년 10월 2일 평양 만찬 답사) 2003년 우공이산을 말하며 썼던 ‘한 걸음, 한 걸음’이 이번에는 분단선 위에서 나왔다.

여섯째, 불신과 무관심의 산. 그는 민주주의의 또 하나의 위기로 “정치에 대한 불신, 냉소, 무관심”을 꼽았다(2007년 원광대 강연). 그리고 그 산을 옮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말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2007년 6월 노사모 총회 메시지)

일곱째, 불평등의 산. “양극화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2006년 신년 연설) 그 전해 광복절에는 이렇게 경고했다. “양극화가 이대로 진행되면 감당하기 어려운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되고 지속적인 성장 기반마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여덟째, 반칙과 특권의 산.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합니다.”(2003년 2월 25일 취임사) 대통령으로서 국민 앞에 처음 한 약속이었다.



- 노 대통령은 ‘노공이산’이라는 필명 속에 지역주의·권위주의·기득권·분단·불평등의 산맥을 허물고자 하는 꿈을 담았다. 

‘노공이산’에 새긴 다짐은 당대에 끝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 한 삽의 흙을 퍼 나르는 일이었다. 자신이 쓰러진 자리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삽을 이어받으리라 믿는 일이었으며, 결국 산을 옮기는 힘은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 그 대를 이은 끈기에서 나온다는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산의 너머에는 언제나 그가 진정으로 꿈꾸었던 ‘사람 사는 세상’이 있었다. 

  • 조진광/기록콘텐츠팀
  • 2026.10.12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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