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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움직이다 - 노무현의 수사학 ②

- 연세대학교 초청 연설

말에는 두 가지가 있다. 사실을 전달하는 말과 사람을 움직이는 말. 노무현의 말은 후자였다. 그는 정책을 나열하기보다 자신의 삶을 들려주었고 논리로 설득하기보다 청중이 스스로 답을 찾도록 질문을 던졌다. 낙선의 밤에도, 청문회의 분노 앞에서도, 국정운영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그의 말에는 일관된 구조가 있었다. 이것은 타고난 언변이 아니라 진심이 만든 수사학이었다.
이 연재는 노무현의 연설과 글을 한 편씩 짚어가며 그가 어떤 지점에서 국민과 청중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를 수사학적으로 분석한다. 내용의 힘, 표현의 기술, 구성의 전략,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만들어내는 감동의 순간들. 정치의 언어이자 인간의 언어였던 그의 말을 다시 읽는 일이 될 것이다. 매월 한 편씩 그 말들을 다시 세워본다.

- 백승권


1. ‘나의 성공’에서 ‘우리의 성공’으로 판을 넓히다
2004년 5월 27일 연세대학교 초청 연설에서 노무현은 거창한 국정철학부터 꺼내지 않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지위도 잠시 내려놓습니다. 젊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니 오히려 그런 기회를 갖기 어렵다며 청중과의 거리를 먼저 좁히죠. 그리고 뜻밖의 말로 본론을 시작합니다. “성공했지요, 제가. 성공의 비결은 뭔가?”

대통령의 연설이라기보다 선배가 후배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출발입니다. 그런데 곧 이야기의 판을 넓힙니다. 자신의 성공담을 들려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청중의 입을 빌려 “혼자만 성공하지 말고 우리나라도 국민도 모두 함께 성공할 방법을 내놓으시오”라고 말합니다. 이어 자신이 원하는 나라를 이야기하며 “함께 한 번 해 보자”고 제안하죠.



‘내가 어떻게 성공했는가’라는 개인적인 질문을 ‘우리가 어떻게 함께 성공할 것인가’라는 공동체의 질문으로 바꿔놓는 것. 이것이 이 연설의 대전제입니다.

그래서 뒤이어 등장하는 어린 시절, 고시 공부, 판사와 변호사 시절의 이야기도 단순한 자서전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현실의 문제에 부닥치고 생각을 바꾸고 공부하고 사회의 문제로 관심을 넓혀 온 과정을 보여준 뒤 그것을 국가와 사회가 나아갈 방향으로 연결하기 위한 긴 설득의 과정인 것이죠.

2. 마음의 문을 열고 몰입시키는 설득의 기법들
① 자기고백: 좋은 사람처럼 보이려 하지 않기
노무현의 자기소개에는 정치인의 성공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웅 서사가 없습니다. 중학교 때는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했고 고시를 준비한 것도 거창한 사회적 사명 때문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는 변호사가 되겠다”고 말할 때 자신에게는 “그런 꿈조차도 없었다”며 “그냥 판사가 되고 싶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유신헌법을 공부해 고시에 합격한 사실까지 이야기하며 스스로 “유신판사 아닌가?”라는 불편한 질문도 던집니다.



자신을 훌륭하게 포장하기보다 오히려 불리할 수 있는 사실을 먼저 꺼내놓는 겁니다. 이런 자기고백은 화자의 도덕적 완벽함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이 사람은 적어도 자기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골라 하지는 않는다’는 신뢰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이 연설에서 노무현은 자신이 처음부터 시대의 문제를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고 강조합니다. 변호사 시절에도 “그저 저만 잘 먹고사는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세상을 자신의 뜻대로 바꾸었다기보다 “세상이 바뀌는 방향으로 동참하면서 저를 바꾸어 왔다”고 설명합니다. 완성된 영웅을 보여주는 대신 변화해 온 인간을 보여주는 것이 이 연설에서 신뢰를 만드는 중요한 수사법입니다.



② 예상 반론법: 청중이 묻기 전에 먼저 묻기
이 연설에는 질문이 유난히 많습니다. “신뢰가 먼저냐, 민주주의가 먼저냐?” “우리나라가 앞으로 제대로 가려면 뭘 해야 하나?” “청년 일자리는 어쩌란 말이냐?” “효과가 언제 날 거냐?” 노무현은 자신의 논리를 일방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청중이 지금쯤 품을 법한 의문을 먼저 입 밖으로 꺼냅니다.

특히 “신뢰가 먼저냐, 민주주의가 먼저냐?”라고 물은 뒤 곧바로 “신뢰가 먼저입니다”라고 답하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이어 계약을 할 때 상대를 믿을 수 없다면 온갖 방어조항을 넣어야 하고 국가가 안전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개인이 별도의 경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다시 “믿음을 바로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한 뒤 “말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진실해야 됩니다”라는 결론으로 끌고 갑니다.



이것은 단순한 문답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청중의 반론과 의문을 연설자가 선점하는 방식입니다. 청중이 속으로 질문하기 전에 화자가 먼저 그 질문을 꺼내면 ‘내가 궁금했던 게 바로 그것’이라는 반응이 생깁니다. 연설자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청중과 함께 질문을 풀어가는 사람이 됩니다.

③ 반복과 열거: 추상적인 가치를 귀에 남게 만들기
노무현은 중요한 대목에서 같은 구조를 되풀이합니다. 자신과의 싸움을 이야기하면서는 “저의 이기심 안에 있고, 저의 비겁함 안에 있고, 저의 안일함 안에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짧게 “그렇습니다. 제 안에 있습니다”라고 정리합니다. 신뢰를 설명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선의를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진실해야 됩니다.” 추상적인 ‘신뢰’라는 개념을 행동의 언어로 하나씩 잘라 반복합니다.

연설의 마지막에 상생의 조건을 설명할 때는 “대화, 토론, 설득, 타협”을 차례로 거쳐 마지막에는 “표결”과 “승복”으로 나아갑니다. 추상적인 민주주의를 행동의 순서로 바꾸어 들려주는 것이죠.

복잡한 생각은 길게 설명할수록 반드시 잘 전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핵심 단어를 짧게 쪼개 반복하고, 순서를 만들어 들려줄 때 오히려 더 오래 남습니다.

3. 전환을 만드는 안내판
이 연설에는 아주 분명한 전환 문장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드린 말씀은 전부 내 문제였습니다. 나로부터 조금 벗어난 때가 변호사 시절입니다.” 노무현은 자신의 어린 시절과 성공 욕구, 판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한참 이어가다가 이 문장을 던집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개인의 생존과 성공에서 법원과 검찰의 권위주의, 시국사건, 민주주의라는 사회적 문제로 이동합니다.

짧은 문장이지만 역할은 큽니다.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정리한 뒤 이제부터는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고 청중에게 알려주는 안내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환 장치는 긴 연설이나 글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연설자는 이미 머릿속에 전체 지도를 가지고 있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화제의 범위가 개인에서 사회로, 사회에서 국가로 커질수록 청중은 길을 잃기 쉽습니다.

좋은 연설자는 내용만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이야기의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알려주는 사람입니다.



4. 웃음이 터지는 지점, 자신도 심판대에 올려놓다
노무현식 유머의 특징은 남을 공격하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농담의 대상으로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부모의 창씨개명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과거의 잘못이 있는 모든 사람을 숙청한다면 자신도 숙청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그러면 숙청 안 될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라고 말합니다. 유신헌법을 공부해 판사가 된 일을 이야기하고는 스스로 “유신판사 아닌가?”라고 묻고 “그렇게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받아칩니다. 시국사건 변호사가 된 과정을 설명한 뒤에는 “제법 괜찮지요?”라고 슬쩍 웃음을 섞습니다.

이런 농담은 단순한 분위기 전환이 아닙니다. 친일 청산이나 유신, 민주주의처럼 자칫 상대방을 훈계하거나 단죄하는 말로 들릴 수 있는 주제를 이야기하면서 자신만 심판대 밖에 세워놓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 역시 모순된 역사와 현실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니 청중도 방어적으로 들을 이유가 줄어듭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더 무거운 메시지를 던집니다. 지도자는 말대로 실천해야 하고 진실을 말할 자격을 갖춰야 한다. 분열을 넘어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웃음으로 문을 열고 자기 자신까지 비판의 대상에 포함시킨 뒤 그 틈으로 원칙을 전달합니다. 그래서 노무현의 자기 낮춤은 겸손을 보여주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청중의 마음을 열기 위한 설득의 기술이 됩니다.



5. ‘하산’을 빌려 권력의 태도를 말하다
이 연설의 마지막은 매우 인상적인 하나의 비유로 끝납니다. “권력을 추구한 사람으로서는 이제 하산길로 들어서고 있습니다.”그리고 이렇게 이어집니다. “등산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하다고 합니다.” “정상의 경치에 대해서 미련을 갖지 않아야 합니다.” 대통령의 임기와 권력을 산에 오르고 내려오는 일에 빗댄 것입니다.

이 비유가 강력한 이유는 ‘권력에 집착하지 않겠다’, ‘자신을 절제하겠다’는 추상적인 말을 누구나 경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장면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정상은 권력의 절정이고, 하산은 권력을 내려놓는 과정입니다. 발을 헛디디는 것은 마지막 순간의 실패이고, 정상의 경치에 미련을 갖는 것은 권력에 대한 집착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연설의 시작과 끝입니다. 처음에는 “성공했지요, 제가”라고 말하며 어떻게 정상에 올라왔는가를 이야기합니다. 마지막에는 “이제 하산길”이라며 어떻게 내려갈 것인가를 이야기합니다. 성공의 비결로 시작한 연설이 성공 이후의 절제로 끝나는 셈입니다.
그래서 이 연설에서 말하는 성공은 단순히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데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정상에 오른 뒤 그 풍경에 집착하지 않고 무사히 내려오는 것까지가 하나의 성공이라는 메시지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는 다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제 자신이 여유 있는 마음으로 하산할 수 있도록 자신을 다스려 내는 것, 그것이 제가 해야 될 남은 일입니다.” 연설 앞부분에서 그는 가장 어려운 상대가 “제 마음속”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기심과 비겁함, 안일함과 싸워야 한다고 했죠. 마지막의 ‘하산’은 바로 그 처음의 문제로 돌아갑니다. 결국 노무현에게 가장 어려운 정치는 상대를 이기는 정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정치였던 것입니다.

필자 : 백승권
- 前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 행정관
- 現 (주)CCC 대표 : 글쓰기 강사
- 공공·기업 대상 누적 3,000여 회 강연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문서의 신’ 출연

연세대학교 특별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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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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