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부터 북핵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북한 무력 공격은 한반도 전쟁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검토 자체도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 와중에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미국은 한국에 이라크 공격 지지와 전투병 파병을 요청했다. 노 대통령은 3월 20일 담화를 통해 “이라크 전쟁이 북핵문제 등 남북관계 현안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미국과 협의 끝에 5~600명 규모의 공병단과 150명 규모의 야전 의무부대 파병을 결정했다.
정부로서는 이 문제를 결정함에 있어, 이러한 여론과 함께 무엇이 우리의 국익에 가장 바람직한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이라크 전쟁 발발에 즈음한 대국민 담화> 연설
특히 이번 전쟁이 북핵 문제 등 남북 관계 현안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데 최선을 다해 나가겠습니다.
우리 국민은 어려울수록 더욱 힘을 모으는 국민들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도전이 거세지만 우리는 능히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힘을 함께 모아 나갑시다. 그 힘으로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갑시다. 그리고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를 발휘합시다.
정부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우리의 국익과 국민 여러분의 안전한 삶을 지켜가겠습니다.
“취임 직후, 부시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이라크 파병을 요청했다. 미국의 북한 폭격론이 떠돌던 시점이라 딱 잘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라크 파병은 옳지 않은 선택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옳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을 맡은 사람으로서는, 회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서 파병을 한 것이다. 때로는 뻔히 알면서도 오류의 기록을 역사에 남겨야 하는 대통령의 자리 참으로 어렵고 무거웠다. 차근차근 변화를 이루어 나가면 언젠가는 옳지 않은 전쟁에 대한 파병 요청을 거절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올 것이다.”
“애초 미국의 요구는 1만 명 이상의 전투병력 파견이었다. (중략) 결론은 전투병 3,000명을 보내되, 비전투 임무를 주는 것이었다. 이런 절충적 해법을 찾고 미국의 양해를 구하는 데서 시민단체의 강력한 파병 반대운동이 큰 의지가 되었다.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대운동과 매우 비판적인 국민 여론이 있었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도 이런 수준의 파병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이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