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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노무현사료연구센터는 대통령기록관과 협의를 거쳐 참여정부 청와대가 퇴임 전후 '공개'로 분류해 이관한 대통령기록 16만6천여 건의 사본을 받았습니다. 대통령 친필메모 네번 째 이야기 입니다. 앞으로 지속적인 내용파악과 정리작업을 통해 주요 사료를 공개하고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3건의 기록... 불의에 저항한 두 사람의 방식

1987년 2ㆍ7추도회에서 연행된 노무현과 문재인의 진술조서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구타와 물고문으로 죽음에 이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그의 죽음은 민주시민들의 각성과 행동을 촉발했습니다. 2월 7일 전국에서 열린 ‘고 박종철군 범국민추도회’가 그러했습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이날 하루에만 전국 8개 도시에서 798명이 연행됐습니다. 이 가운데 부산에서 연행된 사람은 181명, 여기에는 두 명의 변호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노무현과 문재인이었습니다.

 

항쟁의 현장에 서다

이날 집회를 <6월항쟁을 기록하다 4권-부산지역의 6월항쟁>(6월민주항쟁기념사업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7년 출간)은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오후 1시 55분 부민협(부산민주시민협의회) 임원인 노무현 변호사, 김광일 변호사, 김재규 사무국장, 고호석 사무차장 등의 재야인사, 민주단체 회원, 신민당원, 구속자가족 30여 명이 남포동 부산극장 앞에서 오후 2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 대각사 주변으로 몰려다니며 경찰과 산발적 충돌을 벌였던 시위군중들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식을 듣고 집결지인 부산극장 앞으로 몰려와 2시경에는 3백여 명이 집결해 있었다. … 인파는 급격히 늘어났다. <애국가>, <타는 목마름으로> 등의 노래를 부르면서 군중들은 분위기를 뜨겁게 만들기 시작했다. 뒤이어 노무현, 김광일 변호사가 등단하여 연설을 할 때, 뒤늦게 출동한 경찰이 허겁지겁 최루탄을 마구 쏘아대며 추모 집회를 해산하고자 했다. 최루탄이 발사되자 추모객들은 즉각 시위대열로 바뀌었다. (29-30쪽)

 

문재인의 진술조서

집회과정에서 노무현, 문재인 변호사는 김광일 변호사, 김영수 목사 등과 함께 경찰에 강제 연행됩니다. 노무현사료연구센터는 법무법인 부산에서 소장해온 관련기록들을 수집·정리하면서 경찰에 연행된 두 변호사의 진술조서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문재인 변호사는 당시 부산시 경찰국(*요즘으로 말하면 부산지방경찰청입니다)에서 조사를 받습니다. 문 변호사의 진술조서입니다.
빼곡한 조서내용에서 보듯, 문재인 변호사는 조사에 응하며 추도회의 정당성과 권력의 부당함을 또박또박 이야기합니다. 이런 식입니다.

[사료번호69989] 문재인 변호사 진술조서

- 부영극장(*당시 부산극장 옆에 부영극장이 있었음) 앞에서 일어난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요? 
“국민들의 정당한 요구라고 생각하고 경찰이 물리적으로 제지한다는 것은 인권보장에 있어서 성의가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위와 같은 행위로 인해 일반 국민들이 사회적 불안을 느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요?
“국민들이 공감할 것으로 봅니다.” - 그 당시 시민들이 호응하던가요? “참여한 사람들이 호응하였고 구경한 시민들도 마음속으로 호응하였을 것입니다.”

- 노무현 변호사가 추도사를 한 사실 외에 어떤 행위를 하였는지요?
“노 변호사가 준비과정에서 관여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10여분간 구호와 즉석 추도사를 하였으며 그 외는 특별한 행동에 대하여 잘 모르겠습니다.” - 더 할 말이 있는가요? “박군 사건을 참회하여야 하며 개인적인 불행으로 끝내어서는 안 되고 우리나라의 인권상황이나 민주발전에 획기적인 계기가 되어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번 추모제는 국민들의 정당한 요구인데 그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찰이 노무현 변호사를 꼭 집어 물어본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경찰에서 풀려나와 문재인 변호사가 노무현 변호사를 찾았으나 ‘노변’은 그때까지도 풀려나지 못했습니다. 부산 북부경찰서로 연행된 노무현 변호사는 일체의 진술을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북부서에서 부산시 경찰국에 넘겨져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노변’의 진술조서 2건입니다.

 

노무현의 진술조서

먼저 북부서의 조서 서두에 이렇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사료번호69985] 노무현 변호사 진술조서

“나는 오늘 14:30경 전투경찰 복장 경찰관으로부터 연행되어 북부서까지 강제로 끌려온 사실에 있어서 인적 사항을 문의하는데 그것은 사실대로 인적사항을 대주고 그 이후 오늘 본인이 행동한 사실에 관해서는 일체 진술할 수 없습니다.”

이후 진술조서에는 개인이력은 물론 “대중들 앞에서 연설한 사실은 (있습니까)”, “지금 근조 고 박종철군이라는 검은 리본을 좌측 앞가슴 옷깃에 달고 있는 뜻은 무엇입니까” 등의 질문에 대해 ‘묵묵부답’이나 “말 할 수 없다”고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산시 경찰국 조사에서는 묵비권으로 일관하다 경찰을 성토하는 대목도 나옵니다. 경찰은 ‘진술대신 사담 형식으로 대화를 하자’고 요청하고 노 변호사가 이를 받아들여 잠시 이야기하자 그 내용을 바로 조사대상으로 삼습니다. ‘조금 전에 대화한 내용이 사실인가’, ‘대화 내용이 녹음된 사실을 알고 있는가’, ‘녹음 내용을 들어보겠는가’라며 추궁하는 겁니다. 다시 묵비권을 행사하던 노 변호사가 한 마디 합니다.

“사적인 분위기에서 대화를 하였는데 본인도 모르게 녹음을 하다니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당신들 마음대로 녹음하였으면 마음대로 증거로 하면 될 것이지 나는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진술조서 마지막 대목엔 노 변호사의 날인 거부 사실과 함께 ‘본직이 진술조서를 읽어줄 때도 듣지 않겠다는 모습으로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고 있다’는 대목이 지문처럼 남아있습니다.

 이런 노 변호사가 경찰과 검찰에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겁니다. <6월항쟁을 기록하다 4권-부산지역의 6월항쟁>에는 “노 변호사는 6월항쟁 기간에도 자주 시위대의 선두에 섰고 선동가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격렬한 투쟁이 벌어지는 거리에 드러누워 싸우는 모습까지 보여 내내 검찰의 골머리를 앓게 했다”(31쪽)는 대목이 나옵니다.

 

노무현의 원칙주의

실제로 이날 경찰에서 송치한 노 변호사에 대해 부산지검은 하루밤새 무려 네 차례에 걸쳐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초유의 일을 벌입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차장검사 등 간부들을 동원, 부장판사를 법원으로 다시 나오게 하거나 자택까지 찾아가 영장 발부를 종용했고 법원은 이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부산지방변호사회 등은 검찰의 ‘영장발부 종용사건’을 중대한 사법권 침해라고 판단, 진상조사에 착수하는 등 파문이 이어졌습니다. 자서전 <운명이다>에는 이 사건으로 “부산에서 ‘노변’으로 통했던 내 이름이 처음으로 부산 지역 밖으로 알려졌다”(91쪽)고 언급합니다. 이날의 일을 <문재인의 운명>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중의 일이지만, 1987년 고(故) 박종철군 추모집회로 같이 연행됐을 때도 그랬다. 잡혀가서 조사를 받게 됐다. 나는 조사에 응하면서 정당성을 주장하는 식으로 임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노 변호사는 아예 진술을 거부했고 서명날인조차 거부했다. 연행돼 조사받는 자체가 불법·부당하므로 일체 조사에 응할 수 없다고 버틴 것이다. 처음 겪는 상황이고, 더구나 변호사로서 조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뜻을 고수한 것이다. 나는 이것이 후일 정치인이 된 노무현의 원칙주의라고 생각한다. 대의를 위해 자신에게 불리한 길까지 선택하는 것이 그의 원칙주의라는 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다. 그뿐 아니다. 대의를 위한 실천에 있어서도 한계를 두지 않고 철저한 것. 이것이 그의 또 다른 원칙주의이다. (49-50쪽)

 

  • 김상철/ 노무현사료연구센터
  • 2015.04.08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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