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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대선 출마선언을 만든 노무현의 시간들

연보로 되짚어 본 대통령직 도전의 연원



“진정한 국민통합의 시대를 열기 위해,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보통 사람들이 살기 좋은 한국을 만들기 위해 16대 대선에 출마할 것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2001년 12월 10일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이 대선 출마의 뜻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노무현이 만난 링컨》 출판기념회 자리였습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 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노무현이 만난 링컨> 출판기념회 및 후원회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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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근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 표현을 빌리자면 ‘접신(接神)’의 경지에서 쏟아져 나온 이날의 연설은 많은 분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 대통령 명연설 중 하나입니다. 걸어온 길과 나아갈 방향이 담긴 말의 묵직한 힘입니다. 삶의 어느 굽이에서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겠다’ 마음먹었던 걸까요. 연보에서 답을 찾아봤습니다. 공식 선언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과거는 같은 해 9월 6일 부산이었습니다.

2001년 09월 06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후원회를 열다. 행사는 신상우 전 의원이 부산지역 후원회장으로 진행하다. 인사말에서 “그 동안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부산시민들의 성원이 있었기에 오늘 이만큼의 정치적인 성장을 했다”며, “앞으로 시대적 과제인 동서통합과 남북화해에 앞장서겠다”고 밝히다. 행사에 3천여 명의 지지자와 당에서 장태완 고문을 비롯해 김근태·김기재 최고위원, 천정배 의원 등 의원 30여 명이 참석하다. 또 ‘노사모’ 회장인 영화배우 명계남 씨와 문성근 씨, 영화감독 이창동·정지영 씨, 박재윤 부산대 총장, 조성래 부산변협 회장, 김응룡 삼성라이온스 감독 등도 자리를 함께 하다. 행사에 참석한 전국의 노사모 회원 7백여 명은 팔도의 흙을 한 화분에 담은 ‘국민화합의 나무’를 증정하고, 1백여 명은 10일 광주 도착 예정으로 ‘동서화합 자전거 달리기’에 나서다. 한편, 애초 이날 후원행사를 통해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할 계획이었으나 민주당·자민련의 공조 파기, 당정 개편 등 정치상황을 감안해 대선 출정식을 11월로 미루다.


2000년 연보에도 두 차례 대선 출마에 관한 언급이 나와있습니다. 3월 22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은 지역통합적 인물이 나와야 한다. 그런 조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나라고 생각한다.”며 의지를 밝혔습니다. 2000년은 16대 총선이 있던 해입니다. 노 대통령이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한 해이자 바보 노무현과 노사모가 탄생한 해이기도 합니다. 4월 13일 낙선 이후인 5월 24일 연보를 보겠습니다.

[선거유세 중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여 춤을 추는 노무현 후보]

1열에는 사진 설명을 2열에는 사진을 넣으세요.
[선거유세 중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여 춤을 추는 노무현 후보]
[선거유세 중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여 춤을 추는 노무현 후보]
[선거유세 중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여 춤을 추는 노무현 후보]
[선거유세 중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여 춤을 추는 노무현 후보]
[선거유세 중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여 춤을 추는 노무현 후보]

2000년 05월 24일

부산 크라운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차기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하다. 또한 “차기 대통령 후보 선출을 전제로 당내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히다. 이날 기자들에게 “총선에서 부산 출마를 결심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며,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부산에서의 당선을 딛고 부산 시민의 지지를 모아 차기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여 성공함으로써 동서로 갈라진 나라를 하나로 통합하고자 하는 것이었다”고 말하다. 그러면서 “총선 전에 낙선하면 그 꿈을 접어야 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낙선 후 많은 국민의 성원이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며, 민주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 경선에 도전할 뜻을 밝히다. 한편, 언론에 입각설이 보도되는 것과 관련해 “기회가 주어진다면 부산지역 현안을 헤쳐 나가는 데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해 입각도 희망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다.


대선구술집 《선택의 순간들》 이광재 구술에서 이러한 발언의 배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1988년도에 (노 대통령이) 처음 국회의원 당선됐을 때 코리아나호텔 2층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때 제가 스물세 살밖에 안 되잖아요. 그분이 1946년생이니까 마흔두 살이고. 열아홉 살 차이잖아요. 저한테 뭐라 그랬냐면 ‘나는 정치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런데 나를 역사발전의 도구로 써 달라’고. 나는 그게 가장 강한 거라고 봅니다. 역사발전의 도구라는 부분에서 지역구도를 깨야 되겠다고 가장 강렬하게 느낀 건 3당합당을 하게 되면서예요. 이건 결국 호남을 고립시키는 구도이고, 그러면 앞으로 경상도 사람 아니면 대통령 되기 어려운 구도이고, 한국정치를 망치는 거다…(중략)…대통령이란 자리에는 큰 탐이 없었던 거 아닌가. 대통령의 자리라기보다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굉장히 많았어요.” (146-147p)

역사적 소명. 꼭 그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기자가 쓴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에는 보다 직접적인 질문이 등장합니다. ‘정치인으로서 내가 대통령을 꼭 해봐야 되겠다고 작심하신 이유’를 묻는 말에 대한 노 대통령의 답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이인제 씨 때문이었죠.…(중략)…경선 불복 했던 사람이 이번에는 우리 당으로 와서 여기서 또 후보하겠다고 하는데…… 그 설명할 수 없는, 이치에 닿지 않는 현상, 그리고 그 현상에 영합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임과 세력을 보면서 이게 뭐냐, 이게 정치냐, 이대로 가도 되냐고 분노했지요.” (102-103p)

노 대통령의 도전 뒤에는 반칙과 기회주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가 있었습니다. 비슷한 내용이 연보에도 등장합니다. 1997년 9월 30일 노 대통령은 이인제 당시 전 경기지사의 세대교체론을 비판하며 “3당 합당에 적극 영합하고, 좋았던 시절 자리와 권세를 누리며, 3김 정치에 단 한 번도 저항한 일이 없던 사람들은 세대교체의 깃발을 내세울 자격이 없다”고 분노합니다.

[<노무현이 만난 링컨>출판기념회 겸 후원회 중 전국에서 모인 물을 나무에 주는 노무현 상임고문과 지지자들]

1열에는 사진 설명을 2열에는 사진을 넣으세요.
[<노무현이 만난 링컨>출판기념회 겸 후원회 중 전국에서 모인 물을 나무에 주는 노무현 상임고문과 지지자들]
[<노무현이 만난 링컨>출판기념회 겸 후원회 중 전국에서 모인 물을 나무에 주는 노무현 상임고문과 지지자들]
[<노무현이 만난 링컨>출판기념회 겸 후원회 중 전국에서 모인 물을 나무에 주는 노무현 상임고문과 지지자들]
[<노무현이 만난 링컨>출판기념회 겸 후원회 중 전국에서 모인 물을 나무에 주는 노무현 상임고문과 지지자들]
[<노무현이 만난 링컨>출판기념회 겸 후원회 중 전국에서 모인 물을 나무에 주는 노무현 상임고문과 지지자들]
[<노무현이 만난 링컨>출판기념회 겸 후원회 중 전국에서 모인 물을 나무에 주는 노무현 상임고문과 지지자들]
[<노무현이 만난 링컨>출판기념회 겸 후원회 중 전국에서 모인 물을 나무에 주는 노무현 상임고문과 지지자들]
[<노무현이 만난 링컨>출판기념회 겸 후원회 중 전국에서 모인 물을 나무에 주는 노무현 상임고문과 지지자들]
[<노무현이 만난 링컨>출판기념회 겸 후원회 중 전국에서 모인 물을 나무에 주는 노무현 상임고문과 지지자들]
[<노무현이 만난 링컨>출판기념회 겸 후원회 중 전국에서 모인 물을 나무에 주는 노무현 상임고문과 지지자들]
[<노무현이 만난 링컨>출판기념회 겸 후원회 중 전국에서 모인 물을 나무에 주는 노무현 상임고문과 지지자들]
[<노무현이 만난 링컨>출판기념회 겸 후원회 중 전국에서 모인 물을 나무에 주는 노무현 상임고문과 지지자들]

다시 2001년 12월 10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날 노 대통령이 외친 것은 정의의 승리였습니다. 정의가 패배하는 역사를 미래세대에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당위의 선언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한 수사는 아니었습니다. 출마나 그 무엇보다 앞선, 노무현의 진심이었습니다.

연보에서 찾은 대통령 출마 관련 사실은 여기까집니다. 그래서 언제부터 노무현은 대통령을 꿈꿨을까요. 여전히 궁금한 분들을 위해 노 대통령이 퇴임 후 사람사는세상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 중 한 대목 소개합니다.

“양심이 부끄럽지 않으려고 작은 행동에 참여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자존심 상하고, 분노하는 사람, 지난날 저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하다 보니 어느 듯 싸움꾼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끝내 저는 직업 선수가 되었고, 대표선수 자리에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자는 꿈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역사라는 안목으로 보면 승패라는 것이 분명한 것도 아니거니와 정치에서의 승부라는 것도 조금만 길게 보면 싸움을 잘하고 못하고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생각이 같은 사람들의 폭과 깊이에 달린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선수를 키우는 것이 가장 훌륭한 싸움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009.03.19. ‘좋은 글 하나 추천드립니다.’)


  • 김선혜/노무현사료연구센터 연구콘텐츠팀
  • 2017.02.17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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