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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은 그 장소에 대한 생각과 마음의 기록입니다. 그곳을 찾은 특별한 이유와 의미,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여러 곳에서 방명록을 남겼습니다. 그 흔적을 더듬어 가다보면 ‘그때 그곳’에서 노 대통령이 다짐하고 각오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그날 방명록에는 ‘대통령 노무현’이라고만 적었다

정치 입문부터 봉하마을 자연인의 삶까지, ‘방명록에 담긴 노무현의 꿈’

 

노무현 대통령이 방명록에 가장 즐겨 사용한 문구는 ‘사람사는 세상’이다. 88년 정치에 입문하면서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라는 말로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정치를 한 이유이자 평생의 꿈도 그것이었다. 꿈을 나누고 공유하기 위해, 그리고 국민들에게 한 약속을 잊지 않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문구를 적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방명록에 가장 많이 적은 말은 '사람사는 세상'이었다. 

광양에 있는 청매실 농원을 방문했을 때 노 대통령은 방명록에 ‘사람사는 세상’이라고 적으면서 “평소에 쓰는 문구”라고 밝혔다. 2002년 7월 18일 배명중학교 일일교사로 교단에 섰을 때도 학생들의 서명 요청에 ‘사람사는 세상’이라고 써주었다. 2003년 7월 9일 중국 방문시 숙소인 조어대 방명록에 쓴 문구도 ‘사람사는 세상’이었다.

노 대통령은 2007년 11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차이퉁(FAZ)에 기고한 ‘역사의 진보’라는 글에서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을 위한 시장이 돼야 한다. 시장도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공동체를 파괴하는 시장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복지와 행복을 위한 시장이 되어야 한다. 그런 뜻에서 지금도 나는 방명록에 서명할 때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문구를 즐겨 쓴다.”

현충원에서의 다짐과 각오 노 대통령은 중요한 결단의 시기나 정치적 고비의 순간 현충원을 찾았다. 피 흘려 나라를 지킨 영령들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새로운 다짐과 각오로 충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16대 대통령 선거에 승리하고 당선자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현충원을 찾은 노 대통령. 

대통령 당선 다음날인 2002년 12월 20일 현충원을 찾아 방명록에 적은 문구는 ‘멸사봉공하겠습니다’였다. 대통령 당선자로서 국정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끌어 갈 것인지에 대한 책임감과 소명의식이 짙게 배어있다. 

그리고 두 달 뒤 16대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하고 대통령으로의 임기를 시작한 첫날인 2003년 2월 25일 현충원 참배 때는 아무런 문구 없이 ‘대통령 노무현’이라고만 적었다. 수식을 전혀 보태지 않은 절제된 방명록에서 대통령직의 책임의 무게를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였는지가 더 크게 다가온다. 

역사의 현장에서 다짐한 ‘정의가 승리하는 세상’ 노 대통령은 재임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분들의 흔적과 자취가 있는 곳을 자주 찾았다. 그분들을 추모하면서 쓴 방명록엔 노 대통령의 역사의식이 잘 드러난다. 

노 대통령은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한 염원, 그 의지를 '강물'에 비유했다.

 

2002년 8월 15일 노 대통령은 서대문 형무소와 4ㆍ19 묘역을 찾은 노 대통령은 민주 열사들의 희생을 추모하고 그 뜻을 잇겠다는 의미의 방명록을 썼다. 


2004년 9월, 87년 6월항쟁 과정에서 최루탄을 맞아 희생된 이한열 열사 기념관을 찾은 노 대통령은 ‘두려움과 안일의 유혹을 떨치고 일어선 작은 시민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양심과 용기, 고귀한 희생이 민주주의 역사의 큰 물줄기를 이루었다’고 추모했다. 

2002년 4월 11일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설 무렵, 광주 망월동 5·18 묘역을 찾아서는 ‘5월 광주민들의 희생이 오늘 다시 벅찬 희망으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2008년 4월 20일, 퇴임 뒤 ‘시민 노무현’으로서 5·18 묘역을 다시 찾았을 때는 ‘강물처럼’이라는 짧은 글귀를 남겼다. 굽이쳐 흐르면서 끝내 바다로 가는 강물처럼 우리 역사가 바르게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처럼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 가는 역사, 시련 속에서 바로 서는 역사를 강물에 비유해 자주 표현하곤 했다. 5·18 묘역에서 ‘강물처럼’을 쓰고 닷새 뒤, 봉하마을 ‘노사모 자원봉사센터 개소식’에 참석해서는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강물처럼!’이란 명구를 방명록에 적었다.

상해 임시정부 청사, 서대문 형무소, 4·19 묘역 등을 찾아서는 고난과 저항의 역사가 정의로운 세상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방명록에 담았다.

대선후보 시절인 2002년, 광복절을 맞아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찾은 노 후보는 독립유공자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순국선열의 위패를 모신 독립관을 찾아 ‘고난의 역사 위에 정의가 승리하는 역사를,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떳떳한 역사를 세워가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대통령에 취임한 이듬해 두 달 뒤 4·19 묘역을 다시 찾았을 때는 ‘숭고한 저항정신이 정의가 승리하는 역사를 꽃피울 것입니다’라고 썼다. 


해외순방에서 비슷한 의미의 방명록 문구를 남기기도 했다. 2006년 3월 12일 알제리를 국빈 방문한 노 대통령은 수도인 알제 시내에 위치한 충혼탑을 방문 헌화하고 이어 지하에 있는 독립기념관을 찾아 ‘압제에 대한 저항이 인간의 가장 고귀한 권리, 알제리 민족의 거룩한 희생을 온 세계가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라는 문구를 적었다.

알제리는 프랑스로부터 150여년간 식민지 지배를 받다가 1954년 11월 민족해방전선의 무장봉기로 시작된 독립투쟁 끝에 1962년 프랑스와 에비앙 합의서를 끝으로 독립을 쟁취했다. 당시 프랑스의 탄압으로 100만여명이 죽고, 70여만명이 투옥된 역사가 있다.

2003년 7월 10일 상하이 임시정부청사(왼쪽)와 칭화대학교(오른쪽)를 찾은 노 대통령.


중국 방문 때인 2003년 7월 10일, 상하이 임시정부청사를 방문해서는 김구 선생의 집무실에 들러 침대와 탁자 등을 직접 만져본 뒤 ‘독립운동의 전당에서 대한민국의 번영을 기원합니다’라며 한문으로 적었다.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로서 2002년 5월 4일 부산민주공원을 찾았을 때는 ‘민주정신 계승, 민주세력 통합’이라고 써서 부산지역 민주세력의 복원과 결집을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퇴임 직후인 2008년 3월 8일에는 ‘돌아왔습니다. 계속하겠습니다’라고 썼다. 대단히 함축적인 이 문구에 담은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남북정상회담…‘인민’ 표현 논란 일기도 2007년 10월 노 대통령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박3일간 평양을 방문했다. 2일 만수대의사당에서는 방명록에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이라고 적고, 4일 서해갑문 방조제에서는 ‘인민은 위대하다’고 적었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 만수대(왼쪽)와 서해갑문(오른쪽)에 적은 방명록. 


이 방명록 내용을 두고 이런저런 논란이 일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뒤 정당대표와 원내대표들과의 만남에서 한 참석자에게 이와 관련한 질문을 받은 뒤 “거기 가서 ‘국민’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국민은 위대하다’라고 쓰려고 했지만 어색하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이라고 쓴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 기준의 덕담으로 쓴 것”이라며 “국민을 위한 주권의 전당이어야 한다고, 내가 생각하는 가치를 내 나름대로 쓴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기관엔 업무방향 제시 정부부처나 유관기관을 방문할 때는 업무 방향이나 목표를 제시하는 내용을 방명록에 담았다.

안보 기관이나 군부대를 방문해서는 국방과 안보의 목표가 ‘평화’임을 뚜렷이 했다. 대통령 당선자 시절인 2002년 12월 30일 육해공군 3군 참모총장의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충남 논산 계룡대를 방문해 ‘튼튼한 국방, 평화의 초석’이라고 적었고, 2004년 8월 20일 강원도 모 공군부대에서는 ‘확고한 제공권으로 평화의 간성이 되자’며 평화를 강조했다. 이어 이듬해 1월 8일 중앙인사위원회를 방문해서는 ‘적재적소’라는 아주 짧고 간단한 문구로 중앙인사위의 업무 방향을 제시했다.

2003년 12월 4일 정보통신부 주최 '소프트엑스포 & 디지털 콘텐츠페어'에 참석한 노 대통령.


2003년 12월 4일 정보통신부가 주최한 ‘소프트엑스포 & 디지털콘텐츠페어’에서는 방명록에 ‘일취월장 소프트웨어 부국’이라고 적어 소프트웨어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노 대통령은 개막연설에서 “우리나라를 소프트웨어와 디지털콘텐츠 분야의 명실상부한 동북아 허브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기업과 경제단체에는 격려와 응원 메시지 주를 이뤄기업이나 경제단체 방문시 남긴 방명록에는 기업 활동을 격려하고 배려하는 내용이 많았다. 2003년 8월 12일 울산 현대자동차 방문에서는 ‘영원한 첨단의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세계 1등의 위업을 이룹시다’라고 적었고, 2004년 10월 4일 인도방문 중에 들렀던 LG전자 인도법인 노이다공장에서는 ‘LG의 신화가 오래오래 인도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서명했다.

2006년 3월 2일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최고경영자 대상 특별강연에 앞서 방명록에 ‘멀리 보는 경영, 함께 가는 경영, 지속가능한 경영’이라고 적어 기업경영의 방향에 대한 생각과 바람을 표시했다.

생태‧환경에 관심…창조’와 ‘작품’으로 표현

생태와 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노 대통령은 퇴임 뒤 생태농업 현장을 자주 찾았고, 이를 친환경농사에 적극 활용했다.

 

퇴임 뒤 생태농업 등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노 대통령은 그 현장을 많이 찾았다. 2008년 4월 21일 전남 함평군 나비축제에서는 ‘아름다운 창조의 현장입니다’라는 말을 남겼고, 3개월 뒤인 2008년 7월 3일 다시 함평 자연생태공원을 방문해서는 ‘생태는 가장 소중한 보배’라고 격려했다. 

경남 창녕 우포늪 방문(2008.4.14) 때는 ‘땀으로 지켜낸 아름다운 세상입니다’라고 적었다. 재임 중인 2005년 7월 31일 강원도 삼양 대관령목장에서도 ‘참으로 아름답고 장한 작품입니다’라는 비슷한 문구를 남겼다. 자연과 생태의 본래 모습을 지키려는 노력을 ‘창조’로 해석하면서, 그 노력의 결과를 ‘작품’과 ‘아름다움’으로 생각하는 노 대통령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김해시 장군차밭이 있는 선곡다원 방문(2008.5.15)에서는 ‘좋은 차, 좋은 사람’이란 글을 남겼다.

그리고…기억에 남는 문구

(좌)연세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작성한 방명록.  
(우)2003년11월29일 조선족교회에서 방명록을 작성하는 노무현 대통령

 

대선후보 때인 2002년 9월 7일 연세대에서 주최한 ‘학벌없는 사회’ 토론회에 참석, 방명록에 ‘학벌 없는 사회? 예!’라는 익살스러운 문구를 남겼다.


중국동포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표현한 방명록도 눈에 띈다. 노 대통령은 2003년 11월 29일 국적회복을 요구하며 중국 조선족 동포들이 단식농성중인 서울 조선족교회를 방문했고, 이를 계기로 조선족 동포들은 16일간의 단식농성을 풀었다.

예고 없이 전격적으로 조선족 교회를 방문한 노 대통령은 이날 “선물을 줄 형편도 못되고 정부가 골치 아프니까 농성 해산하라고 협상하러 온 것이 아니다. 역사가 가로막고 국제질서가 가로막고 있지만 마음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상대국가(중국)를 존중해야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잘 안 된다”며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스스로 풀겠다 마음먹은 것을 대통령이 되도 못하니 안타깝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는 방명록에 다음과 같은 글로 그들을 위로했다.

“중국동포 여러분 힘내세요. 국경과 법 제도가 우리를 자유롭게 못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들의 믿음은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건강 잘 돌보십시오.”

2006년 11월 4일 김대중 도서관 방문 오찬(위). 2003년 1월 5일 한미연합사 방문(아래). 


노 대통령은 2006년 4월 4일 김대중 도서관을 찾았다. 이틀 전 개관한 ‘김대중 도서관’의 개관을 축하하고 오찬을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의 사저를 방문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김대중 도서관 전자방명록에 ‘치열한 삶으로 역사의 진보를 이루셨습니다. 치밀한 기록으로 역사를 다시 쓰게 할 것입니다’라고 적었다. 


한미관계와 관련해서도 의미를 함축한 방명록을 남기기도 했다. 대통령 당선과 관련 한미관계의 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2003년 1월 15일, 당선자 신분으로 한미연합사를 방문한 노 대통령은 방명록에 영문과 한글로 ‘We are good friends 우리는 좋은 친구’라고 적어 한미관계의 방향에 대한 기본적 입장을 표현했다. 2003년 5월 15일 부시대통령과 가진 첫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백악관 루즈벨트 룸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하여’라는 문구를 남겼다.

2003년 7월 9일 중국 만리장성을 방문하고.


2003년 7월 9일 중국 만리장성을 돌아본 뒤에는 ‘힘은 헤아릴 수 없고 그 뜻도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후손들에는 자랑거리’라고 적었다. 이날 노 대통령은 방명록에 서명하기 전 2~3분 동안 생각을 가다듬은 뒤 이 문구를 썼다.

 

  • 정구철/ 노무현재단 사료편찬특별위원회
  • 2011.10.17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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