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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실 제대로 알려야 진정한 통합도 가능"

주요 연설로 돌아본 노 대통령의 역사인식과 '바른 미래'로 가는 길

 

우리의 지난날은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좌절과 굴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정의는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했습니다.” <2003년 3.1절 기념사>

박근혜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진보세력이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고 가르친다는 김무성 대표의 주장처럼 새누리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역사관을 들먹이며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내세우고 있다. 노 대통령의 인식과 발언을 자의적으로 떼어내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때마다 되풀이되는 나쁜 행태다. 여기서 굳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한 찬반을 거론하진 않겠다. 다만 노 대통령의 역사인식, 이를 바탕으로 한 지향과 실천에 관해 정리해두고자 한다. 중요한 건 입장의 차이가 아니라 사실관계와 진실을 대하는 태도라는 생각에서다. 소개하는 내용들은 모두 노 대통령이 재임시기 재임시기 국민들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밝힌 내용들이다.

 

고난과 굴절의 역사를 넘어 평화와 번영의 미래로

“100년 전 우리는 망국의 치욕을 겪어야 했습니다. 백성들은 굶주리고 짓밟히는 고난의 세월을 겪어야 했고, 수많은 애국지사들은 가족을 버리고 고향을 버리고 멀리 이역만리에서 싸우다가 끝내는 목숨을 바쳐야 했습니다. 이 땅의 위정자들이 나라의 힘을 키우지 않고 서로 편을 갈라 끊임없이 싸우다가 초래한 일입니다.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아 나라를 일으켜야 할 때, 오히려 백성들을 억압하여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게 한 결과입니다. …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친일파까지 권력에 이용한 장기독재는 결국 4.19의 희생을 가져왔습니다. 5.16과 10월 유신, 군사독재로 이어진 불행한 역사도 5.18의 비극을 낳았습니다.” <2006년 현충일 추념사>

“애국선열들이 하나뿐인 목숨까지 내놓고 투쟁했던 그 시간에 민족을 배반하고 식민통치를 앞장서 대변했던 친일행위가 여전히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습니다. … 한때는 친일인사가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심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은 3대가 가난하고 친일했던 사람은 3대가 떵떵거린다는 뒤집혀진 역사인식을 지금도 우리는 씻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2004년 광복절 경축사>

“지금도 정신대 할머니들은 한을 씻지 못하고 정리되지 못한 역사 앞에서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독립투사, 그 분의 후손들이 오늘 누리고 있는 사회적 처지는 소외와 고통입니다. … 아직도 우리의 역사에 대한 해석, 오늘의 현실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대립과 갈등을 우리는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4년 3.1절 기념사>

 

이처럼 3.1절, 현충일, 광복절 등 국가 주요 행사마다 노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불행하고 아픈 역사를 이야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패배주의적 역사관, 자학사관에 빠진 때문인가? 조금만 더 들어보면 우리 역사를 바라본 노 대통령의 시각과 국민들과 함께 현실로 만들고자 했던 미래의 모습을 그릴 수 있다.

“지난 한 세기 우리의 역사는 고난과 극복의 역사입니다. 나라를 잃은 칠흑 같은 절망 속에서도 우리 선조들은 항일독립투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 국민은 전쟁의 잿더미에서 나라 경제를 세계 10위권의 강국으로 올려놓았습니다. 독재체제를 물리치고 자유와 활력이 넘치는 민주주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2006년 광복절 경축사>

“저는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이뤄낸 우리 국민의 역량을 믿습니다. 반만년의 역사를 통해 수많은 도전을 이겨내고 빛나는 문화를 창조해온 우리 민족의 저력을 믿습니다. 그 역량과 저력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갑시다. 우리의 아들딸, 손자손녀들에게 보다 평화롭고 번영된 미래를 물려줍시다.” <2007년 광복절 경축사>

“다시는 그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합시다.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은 보다 넉넉하고 안정된 세상에서, 제 나라와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저마다의 꿈을 자유롭게 펼치면서 당당하게 세계질서에 참여하고 주도하는 국민으로 살게 합시다.” <2003년 광복절 경축사>



진상 규명 통한 용서와 화해, 신뢰와 통합을 위해

노 대통령은 국민통합을 자신의 시대적 소임으로 생각했다. 분열의 극복은 일제치하의 독립국가 건설, 산업화 시대의 가난 극복, 1970~80년대 민주화에 이어 우리 민족이 당면한 역사적 과제였다. 친일과 항일, 좌우 대립, 독재·민주세력 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국민들의 힘을 하나로 결집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망국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도 동아시아 강대국으로 도약하는 새 역사를 쓰기 위해서도 통합은 피할 수 없는 과제였다. 그 해법 가운데 하나가 과거사 정리였다.

“85년 전 3.1운동 때 전 국민이 모든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가 됐듯이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다시 한 번 차이를 극복합시다. … 항일을 했던 사람, 친일을 했던 사람,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던 사람들, 이 사람들 사이에 맺혀 있는 갈등, 그리고 좌우 대립의 사이에서 생겼던 많은 갈등,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 이 상처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역사적 안목으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지혜를 만들어 갑시다. 스스로 한발 물러서자는 것입니다. 스스로 가슴을 열자는 것입니다. … 우리는 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진상이라도 명확히 밝혀서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올바른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역사는 미래를 창조해나가는 뿌리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정의와 양심이 살아있는 바른 역사를 가르칠 때 그들이 바른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4년 3.1절 기념사>

“우리는 지난날 분열과 대결의 역사가 남긴 상처를 치유하고, 나라와 국민이 하나로 통합된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 대결과 반목의 역사에서 비롯된 감정의 응어리는 이제 씻어내야 합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최소한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침해한 행위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해야 합니다. 반면에 과거 역사의 과오에서 비롯된 정통성 시비나 자격 시비도 이제 역사의 평가로 돌립시다. 그래서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이루고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갑시다.” <2006년 광복절 경축사>

 

자랑스러운 내일, 국민의 자유와 창의가 빛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과거사 정리가 필요한 이유는 또 있었다. 굴곡진 현대사를 거치는 동안 원칙과 상식, 신뢰와 같은 사회적 자본이 거의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을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국가는 언제나 정당해야 합니다. 국가의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회에서 국민들은 도덕적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국가를 신뢰하고 정직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 그래서 국가가 저지른 과오는 더욱 철저히 밝혀야 합니다. 국민들 앞에 사죄할 건 사죄하고 앞으로 부도덕한 범죄는 다시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할 때라야 그 국가가 비로소 바로 갈 수 있고, 국민들이 비로소 그 국가 목표에 동참하고 열심히 노력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성공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국가의 도덕적 신뢰를 바로 세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역사의 진실을 밝혀 나간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당장 여기저기서 “경제도 나쁜데 과거사에 집착하면서 정쟁을 일으키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정치적 계산과 보복이 깔려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마주해 교훈으로 삼고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 억울한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용서와 화합으로 국민통합으로 나아가자는 노 대통령의 목소리는 잘 전달되지 않았다. 



“진실 밝히는 일에 왜 의견이 갈리고 대립하는가”

“분열과 갈등을 걱정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화합하고 포용하자고 하십니다. 그런데 왜 진실을 밝히는 일에 의견이 갈리고 대립이 있어야 하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진실은 합심해서 밝혀야 하는 것입니다. 진실이 밝혀져서 부끄러운 일이 있다 해도 회피할 일이 아닙니다. … 밝힐 것은 밝히고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 합니다. 그 토대 위에서 용서하고 화해할 때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2004년 광복절 경축사>

“역사를 배우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면 과거사는 있는 그대로를 밝히는 것이 또한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짓을 배울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과거에 대해서 솔직해야 합니다. 그래야 과거를 떨쳐버리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랑스런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나가야 합니다. 특히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국가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합니다. 또한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 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입니다. 그랬을 때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확보되고, 그 위에서 우리 국민들이 함께 상생하고 통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 대통령 재임시기 1965년 한일협정 체결 과정에서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돼 조사가 이루어졌다. 관련 문서를 공개하고 청구권자금 지급이 미진했던 데 대해 국가 차원의 지원방안을 마련, 국회에 제출했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와 재산조사위원회도 설치했다. 친일의 실상을 밝히고, 민족과 나라를 팔아 치부한 재산까지 그 후손들이 누리는 역사의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함이었다. 1948년 발생한 제주 4.3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희생자들에게 국가원수 최초로 사과했다. 또 군·검찰·국정원·경찰 등 국가기관에 과거사 정리위원회를 설치해 국가가 국민들에게 피해를 입힌 사건을 재조사하고 사과했다.

노 대통령은 재임 첫해이던 2003년 일본 국빈 방문 당시 국회를 찾아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용기라며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다. 

“나는 오늘 의원 여러분과 각계의 지도자들께 ‘용기 있는 지도력’을 정중히 호소하고자 합니다. 과거는 과거대로 직시해야 합니다. 솔직한 자기반성을 토대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평가하도록 국민들을 설득해나가야 합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도자의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바로 세워야만 우리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민족공동체를 배반하지 않는 민족정기를 세울 수 있습니다. … 역사를 진실되게 정리하여 우리 국민들이 어떤 교훈을 배울 것인지가 우리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가장 긴요한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진실에 근거하여 정통성 있는 역사를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실 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도자의 용기

“진실에 근거하여 정통성 있는 역사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며 “진실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도자의 용기”라는 메시지를 굳이 대외관계에 국한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역사를 배우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면 과거사는 있는 그대로를 밝히는 것이 또한 마땅한 일”이다. 노 대통령은 그러한 토대 위에서 진정한 국민통합도 가능하다고 봤다.

입장과 관점에 따라 이에 대한 평가를 달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가 입장 혹은 진영논리를 앞세워 역사적 진실과 사실관계를 왜곡하거나 멋대로 해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말하기 전에 당장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여당의 행태가 그렇다.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행태를 반복하는 게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역사를 반복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 노무현사료연구센터
  • 2015.10.27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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