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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월 1일이면 ‘세종시’가 독립된 광역자치단체로 공식 출범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신행정수도’를 국민에게 약속한 이후 10년만입니다. ‘신행정수도’ 건설은 노 대통령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비록 추진과정에서 서울 집중적 기득권과 정치적 이해관계의 충돌 아래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로 축소됐지만,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는 참여정부에서 국가균형발전 과제 속에 추진된 대한민국의 미래였습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한때 중단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세종시 건설 백지화가 시도됐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추진됐습니다.1월 29일은 참여정부가 ‘지방화와 국가균형발전시대’를 선포한 지 8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를 계기로 노무현 대통령이 구상한 ‘지방 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돌아봤습니다.

‘세종시’와 ‘균형발전’은 노무현 대통령의 오랜 꿈

93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부터 행정수도 이전 구상,
대통령 퇴임 전 “시민조직이 힘 실어야”

 

2004년 1월 29일 '지방화와 국가 균형발전시대' 선포식. 참여정부에서는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이 중요한
국정과제로 추진됐다. 
 


“수도권 비대가 가져오는 낭비 요소가 엄청납니다. 지역이 고루 발전하지 않으면 많은 갈등 요인이 발생하고 나중에 엄청난 갈등 관리비용을 발생시킵니다. 30년 동안 비정상적인 격차가 발생했는데도 정책이 근본적으로 해결을 못했습니다. 30년 동안 못한 거니까 어떻게 하겠느냐고 포기해 버리면 영원히 미래가 없습니다. 선거용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 문제는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던 것이고 공부를 한 지 오래 됐습니다.” - 2004년 12월 27일 <경향신문>과 가진 송년 특별회견에서 

참여정부에서 추진 중이던 ‘신행정수도 건설 계획’이 논란을 빚으며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좌초 위기에 몰려 있을 때였다. 2003년 12월 29일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 다수의 지지로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이 제정됐으나, 해가 바뀌자 한나라당이 태도를 바꿨고 보수언론들이 반대 여론을 만들어갔다. 

이어 2004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는 ‘수도 이전’에 반대한 세력들이 제기한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 위헌소송에 대해 관습 헌법을 내세워 “서울이 아닌 곳에 행정수도를 만들려면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일각에서는 “신행정수도 건설을 포기하자”는 주장이 일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포기하면 우리에겐 영원히 미래는 없다”며 뜻을 꺾지 않았다. 

신행정수도 건설은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를 하면서 가다듬어온 신념이었다. 


‘선거용’이란 오해와 진실
신행정수도 건설은 처음 제기될 때부터 논란을 몰고 다녔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국민과 한 약속이었다. 노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 후보 시절 “당선되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해 청와대와 중앙부처를 옮기겠다”고 공약했다. 

당시 신행정수도 공약 선정을 놓고 민주당 내에서도 반대가 많았다. 모두가 서울의 인구 과밀화와 집중 해소를 위해 수도 이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선거에서 수도권 표를 잃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완강했다. 

노 대통령이 당선된 뒤 당내 사람들에게 “신행정수도 공약으로 재미를 좀 봤지요”라는 발언을 해서 신행정수도 건설이 선거에서 충청권 표를 노리고 정치적 목적으로 추진됐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그것은 오해였다. 오히려 신행정수도 공약은 노무현 대통령후보에게 악재였다. 한나라당이 신행정수도가 ‘수도권 공동화’를 초래한다고 공격하는 바람에 수도권에서 역풍이 불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이 이 공약을 밀고나갔던 것은 정치적 손익 계산을 떠나 국가적으로 절실한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신행정수도 건설을 푯대로 한 지방 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은 노 대통령이 정치를 하면서 오래 전부터 가다듬어온 신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를 하는 동안 지역주의의 최대 피해자였다. 한국 정치구조의 병폐인 지역주의의 뿌리에는 차별로 인한 낙후된 지역발전과 수도권 집중이란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노 대통령은 1993년 원외 정치인 시절, 지방자치 시대를 앞두고 설립한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서 지방자치와 분권을 연구하면서 행정수도 이전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서울의 인구 과밀화와 집중에 따른 주택난, 교통난, 환경악화 등은 이미 심각한 문제였다. 말 그대로 ‘서울은 만원(滿員)’이었다. 이대로는 서울의 미래경쟁력을 기대하기 어려웠고, 지방은 지방대로 발전동력을 잃고 갈수록 침체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서울의 행정기능을 분리해 국토의 중심지역으로 옮기자는 것이었다. 

행정수도 이전 논의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동안 여러 번의 시도가 있었고, 언론들도 필요성을 피력해 왔다. 197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 때는 충청권 행정수도 건설계획이 마련된 바도 있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이해관계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추진되지 못했다. 

노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행정수도 이전 계획과 수도권 재정비, 지방 발전과 국가 균형발전 등을 국정과제로 삼았다.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에는 전국을 돌며 ‘지방분권과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토론회’를 열고, 의견들을 수렴했다. 그리고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지방 분권과 국가 균형발전은 국가의 미래가 달린 문제이며, 비상한 결의로 추진해 나갈” 것임을 거듭 약속했고, 참여정부 집권 동안 관련 국책사업들을 추진했다. 

‘세종시’의 탄생과 혁신도시 추진참여정부 출범 초에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지방분권특별법, 신행정수도특별법(이 법은 2004년 위헌 결정으로 2005년 5월 행복도시특별법이 제정) 등의 관련법과 균형발전특별회계 등의 제도가 정비되고, 대통령 산하에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꾸려졌다. 그리고 2003년 6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은 ‘대구 구상’을 통해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청사진을 내놓았다. 또 그 이듬해인 2004년 1월 29일에는 참여정부가 ‘지방화와 국가균형발전시대 선포식’을 열었다. 

참여정부는 지방화와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세 가지 원칙으로 신행정수도 건설과 지역 균형발전 추진, 지역혁신체계와 혁신주도형 지방경제 구축, 지방 우선 육성과 수도권의 계획 관리 등을 세웠다. 그리고 과제로 행정수도 기본구상 수립 및 공공기관 지방 이전계획 확정, 국가 연구개발 예산의 지방 지원 비율 확대와 지방대학 육성, 지역혁신체계 시범사업 추진, 국가 균형발전 5개년 계획 수립, 지역경제발전 토대 구축 등을 정했다. 

한편, 2004년 위헌 논란을 겪은 신행정수도 건설은 그 이듬해부터 청와대와 국방부를 비롯한 행정기능의 일부를 서울에 남기고 나머지를 옮기는 것을 뼈대로 한 행정중심복합 건설로 바뀌어 추진됐다. 행정중심복합도시는 애초 노 대통령이 구상했던 신행정수도에는 못 미치는 ‘반쪽짜리’ 행정수도였다. 그런 가운데 2005년 3월 2일 국회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특별법’이 통과됐다.

보수언론과 보수세력들은 ‘행복도시특별법’에 대해서도 ‘위헌 주장’을 하며 반대하고 나섰다. 또 다시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이 청구됐으나, 2005년 11월 24일 헌법재판소가 ‘각하 결정’을 내림으로써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국민 의견을 수렴해 충청권 연기군 일대에 새로 건설될 행정중심복합도시에 ‘세종시’란 이름이 붙여졌다(세종시는 기획단계에서 2011년까지 건설하여 2012년부터 행정기관의 단계적 이전과 주민 입주가 목표였다). 

2007년 7월 20일 행정중심복합도시 기공식. 세종시는 2012년 행정기관의 첫 이전과 주민 입주를 목표로
착공됐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의 건설과 함께 공공기관 이전 및 혁신도시, 그리고 기업도시의 건설도 추진됐다. 2005년에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계획 발표와 혁신도시들이 선정됐고, 2007년 1월 ‘혁신도시특별법’이 제정됐다. 또한, 2007년 2월에는 그동안 추진됐던 정부와 공공부문 이전과 연계하여 민간부문 이전을 위한 세제혜택 등 자립형 지방화 정책(안동 구상)이 발표됐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흔들기도 끊이지 않았다. 보수언론은 국가 균형발전 정책이 부동산 투기를 부추겼다며 ‘전국의 땅투기장화’라고 호도했다. 언론에서 이전에 거론됐던 수도권 과밀화나 지방 공동화 문제는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다.

2007년 9월 12일 제주 서귀포 혁신도시 기공식. 노무현 대통령이 축사에서 "국민들이 균형발전 정책을
지켜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대통령의 걱정과 가야할 길그런 반대를 딛고 참여정부는 로드맵에 따라 국가균형발전 사업들을 착착 진행해 갔다.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에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균형발전 국책사업들이 정치권의 합의와 국민과 약속 아래 추진된 것인 만큼 차기 정권에서도 이어지길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중단’될 것을 걱정하기도 했다. 대통령은 2007년 9월 12일 제주 혁신도시 기공식 자리에서 그 심경을 밝히며 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참여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은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새로운 국토를 조성하기 위한 정책입니다. 전국에 펼쳐질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는 지역경제에 새로운 활력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에게 수준 높은 생활공간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건축, 환경, 교통, 문화, 복지 등 모든 분야의 첨단기술을 담아낸 쾌적하고 아름다운 도시로 건설될 것입니다. 나아가 미래 도시발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도시에 대한 우리 국민의 눈높이를 높이고 기조의 도시들이 새롭게 변모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도시들을 거점으로 농촌 생태계와 공동체를 복원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도시와 농촌이 교류하면서 전국 어디서나 수준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것입니다.

(중략) 하지만 균형발전 정책은 앞으로 위축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멈추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또 더 심하면 되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수도권은 막강한 인구와 인재와 부를 갖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동안에는 균형발전정책의 진행을 막지는 못했습니다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중략) 이제 국민 여러분께서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이 정책을 꼭 지키겠다고 마음먹으면 지킬 수 있습니다. 이젠 지역만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혁신협의회가 아니라 균형발전을 추진하는 시민조직이 만들어져서 힘을 실어주어야 합니다.”
- 2007년 9월 12일 제주 혁신도시 기공식 축사

노무현 대통령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정권이 바뀌고 참여정부에서 추진되던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사업들은 멈춰 섰다. 지방정부들의 혁신 노력들도 겉돌았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참여정부의 정책들을 모두 폐기했다. 지방화와 균형발전의 자리에는 4대강 개발과 수도권 규제 철폐가 들어섰다.

세종시 계획을 훼손하려는 시도도 벌어졌다. 2009년에 이명박 정부는 ‘세종시 원안’에서 핵심적인 행정기능을 빼버리고 기업도시로 만드는 수정안을 들고 나왔다. 수정 이유는 중앙부처 분산에 따른 행정비효율과 자족용지 부족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국가 균형발전의 상징인 세종시를 충청권 신도시쯤으로 전락시켜 참여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신을 짓밟으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2010년, 이명박 정부는 국회에 세종시법 수정안을 제출했다. 국회 본회의 표결까지 부쳐졌으나 한나라당 내 박근혜 의원의 반대 속에 부결됐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세종시는 원안으로 추진됐다. 세종시는 살아남았으나 참여정부 아래 싹을 틔운 지역 혁신과 균형발전 사업들은 거꾸로 돌아갔다.

그것이 초래할 결과는 자명했다. 수도권은 과밀화와 집중 심화에 따라 심각한 폐해만 더 키울 것이고, 지방은 자립하지 못하고 낙후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결국 그것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다. 노 대통령이 구상한 지방 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실현시키는 것은 이제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 권영준/ 노무현재단 사료편찬특별위원회
  • 2012.01.18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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