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 ‘노무현입니다’가 개봉 열흘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한데 이어 200만을 향해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흥얼거리며 걷던 노 대통령의 뒷모습과 노래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으실 겁니다. 이창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최고의 선물 같은 장면이었고 조금 과장하면 이 영화의 전부였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노변'을 만든 변화의 노래
‘선봉에 서서 하늘을 본다/고향집 하늘 위에 굴뚝연기가/투사가 되어 조국의 내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1980년대 민중가요인 ‘선봉에 서서’입니다. 당시 부산지역의 대표적 인권변호사이자 6월항쟁 야전사령관으로 활동했던 ‘노변’이 거리에서 시민들과 부르던 노래 중 하나일 겁니다.
민중가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과 보다 인연이 깊은 노래는 ‘어머니’입니다. 노 대통령의 지향이 담긴 ‘사람 사는 세상’이 바로 이 노래 가사 일부이기도 합니다.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와의 대선 후보단일화 논의가 한창이던 2002년 11월 21일,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통령후보는 서울 대학로의 호프집에서 열린 문화예술인 간담회에 참석했습니다. 무대에 올라 기타를 치며 ‘상록수’를 부른 노 후보는 “2절을 까먹었다.”며 쑥스럽게 웃고는 앵콜을 외치는 청중을 향해 말합니다.
“제가 80년대 노래 얼추 다 압니다. 그렇게 노래하면서 용기도 났고, 길거리에 나가 최루탄에 맞서고 했습니다. 제가 다른 변호사나 어른들하고 좀 다르게 직접 길거리에 나갔던 것은 노래를 배웠기 때문에 아마 (거리로) 나갈 수 있었던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과격한 이미지’를 우려한 보좌진이 ‘사랑으로’를 청했지만 “제가 하고 싶은 노래는요,”라며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너와 내가 부둥켜안을 때’하고 ‘어머니’를 열창했던 노무현 후보는 나흘 뒤인 25일, 여론조사에서 정몽준 후보를 앞서며 마침내 단일후보로 확정됐습니다.
2002년, 온힘을 다해 부른 희망
선거과정 내내 당 안팎에서는 재신임과 교체를 주장하는 노골적 후보 흔들기가 계속됐습니다. 이에 맞선 후보 지키기 움직임은 시민에게서 나왔습니다. 노사모를 중심으로 한 ‘희망돼지 저금통 분양사업’과 ‘희망 포장마차’가 대표적입니다. 선대위 산하의 국민참여운동본부 발족과 유시민을 필두로 한 개혁국민정당 창당 발기인대회도 잇따랐습니다.
개혁당 창당발기인대회 다음날이던 10월 21일, 노무현 후보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희망 포장마차를 찾습니다. 며칠 사이 쇄도한 후원금이 5억 7천만 원을 넘어선 날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애창곡 ‘작은 연인들’을 부른 노무현 후보는 “사람한테 이기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바꾸는 것이 목표”라며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든 안 되든 계속 가야 할 바른정치의 실현을 강조했습니다.
국민참여경선부터 후보단일화와 철회, 그리고 당선에 이르기까지 2002년 대통령선거는 굽이굽이 드라마의 연속이었습니다. 4월 27일, 경선 승리로 새천년민주당 대통령후보가 된 노무현 은 이를 직감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날 저녁 경기도 덕평에서 열린 ‘2002 노사모 희망 만들기’에서의 말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희망을 잘 압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들의 희망을 다 채워드릴 수 없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래도 저는 까딱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제가 모자라는 것도 많고, 부족함이 있는 보통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제가 다 채워드리지 못해도 잘 이해해주시리라 믿고 걱정이 없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씩 하나씩 어려운 고비를 넘겨왔듯이, 하나씩 하나씩 장벽을 넘어왔듯이 앞으로도 다 해낼 수 있습니다. 잘하겠습니다.”
이날 노무현 후보가 무대에서 부른 노래는 ‘아침이슬’과 ‘어머니’, 그리고 ‘타는 목마름으로’였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좁히는 노래
또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에는 ‘부산갈매기’와 관련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2000년 총선에서 지역구 종로를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온 노무현 후보는 비오는 유세장에서 자신을 기다려 준 시민들을 위해 노래를 하나 하겠다고 말합니다.
“이 노래 제가 다 모르는데…” 하며 청중 앞에 선 그의 뒤로 ‘부산갈매기’ 전주가 흐르고, 박자를 놓친 노무현 후보가 멋쩍게 고개를 갸웃합니다. 결국 “오늘 밤에 확실히 떼서 내일부터 부를게요.”하고 물러선 다음 장면은 사무실로 돌아온 노 후보가 노래를 익히는 모습입니다. 가사를 적어두고 차안에서 연습한 덕분일까요, 총선 전날이던 4월 12일 밤 마지막 거리유세에서 노무현 후보는 잔뜩 쉰 목소리로 반주도 없이 ‘부산갈매기’를 끝까지 불러냅니다.
퇴임 후, 고향으로 내려 온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은 시민들에게 화답하는 방법 중 하나도 노래였습니다. 2008년 5월 4일, 방문객 앞에 선 노 대통령은 특유의 흥을 더해 ‘비에 젖은 주막집’을 구성지게 불러냅니다. 뜻밖의 즉석 공연에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습니다.
지난 8주기 추도식에서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흥얼거리는 콧노래 소리도 다시 듣고 싶다.”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습니다. 상황과 처지에 따라 ‘느낌’은 달랐지만 대통령의 노래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여전히 깊게 남았습니다.
“내일 연설 때문에 부르시길래 ‘야 이거 정말 큰일 났다’ 해서 올라가서 관저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저쪽에서 불은 깜깜한데 대통령님 노랫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시면서 저쪽에서 오시는 거예요. 근데 정말 가까워오는데 막 심장을 조여 오는 느낌이었는데 오셨어요.” - 강원국 구술
“가끔은 대통령보다 그의 노랫소리가 먼저 응접실에 도착했다. 내실에서 걸어 나오면서 그가 흥얼거리는 콧노래였다. 경쾌한 멜로디가 ㄱ자로 꺾인 관저의 복도를 따라 울려 퍼졌다. 레퍼토리는 다양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허밍도 절반은 되었다. 익숙한 노래도 있었다. ‘작은 연인들’이었다. 자칫 무거울 수도 있는 분위기가 대통령의 콧노래로 반전이 되곤 했다. 들을수록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마력 같은 구석이 있었다.” - 윤태영 《기록》 49-50p
마지막으로, 노 대통령의 공식 애창곡인 ‘작은 연인들’에 관한 사연을 소개합니다. 노무현사료관이 대통령기록관을 통해 서비스하고 있는 ‘제16대 당선자 노무현’ 웹사이트의 네티즌 칼럼 ‘스나이퍼! 참모가 말하는 노무현의 칼럼방’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링크를 누르시면 바로 이동합니다.
[스나이퍼! 참모가 말하는 노무현의 칼럼방] 너무나 솔직담백한, 그래서 존경스러운……
이전글[기증사료이야기17 김영수 작가] “편안하게 대화... 다음글[기증사료이야기19 문성필 님]“노 대통령과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