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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이야기 유의미한 주요 사료를 소개하고 그 배경과 맥락을 정리해 제공합니다.

청문회 스타 노무현 의원의 ‘5공비리와 한판승부′

13대 국회의원 노무현 ‘5공비리와 정경유착’ 강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와 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정치인들의 정치자금은 정당 활동이나 선거에서 국민의 정치적 대의를 달성하기 위한 요소로 작동합니다. 이에 정치학자들은 정치자금을 민주주의 유지비용으로 정의합니다. 

문제는 정치인들의 돈이 사회 안에서 얼마나 유리알처럼 관리되어지느냐, 또한 그 사회에서 돈 안 드는 정치시스템이 작동하느냐일 것입니다. 그것이 발전된 민주주의 사회를 재는 척도가 됩니다. ‘돈 안 드는 정치’는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와 참여정부의 제도개선 노력으로 진일보했스니다. 그럼에도 회고록 <성공과 좌절>에서 자책했듯 퇴임 후 주변 사람들의 돈 문제가 대통령의 발목을 잡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참여정부에서 한국정치의 뿌리 깊은 부패구조였던 정경유착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과거 정치권은 선거 시기 등에 소요되는 막대한 정치자금을 재벌들로부터 조달했고, 그 대가로 재벌들에게 각종 특혜를 제공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이 정경유착의 부패구조를 해체시켜 버렸습니다. 

변화는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시작됐습니다. 인터넷 선거운동과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금으로 치러진 당시 대선은 천문학적 선거자금을 대폭 줄였습니다. 그리고 줄어든 선거자금마저도 대통령 취임 직후 불거져 나온 불법 선거자금 의혹을 계기로 노 대통령의 결단 아래 여야 정치권에 대한 수사가 벌어져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버렸습니다. 이를 참여정부에서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제도화했습니다. 

정경유착 근절을 위한 정치개혁은 노 대통령이 정치를 하면서 오래 전부터 가다듬어온 구상이었습니다. 대통령은 1988년 국회의원 시절 5공 청문회에서 일해재단 모금이 전두환 정권의 강압과 이에 야합한 재벌 간의 정경유착임을 밝혀냈습니다.  

13대 국회에서는 1988년 11월 7일부터 사흘 동안 제5공화국비리조사특별위원회 일해재단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다른 증인들에겐 고함 치고 날을 세웠던 여야 의원들은 청문회 증인으로 나온 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회장님’으로 예우하며, 어떤 의원은 손수 일어서서 배웅까지 하는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이는 정치자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여야 지도부의 지시 아래 벌어진 해프닝이었습니다.  

텔레비전 생중계로 이를 지켜본 국민들은 실망했습니다. 당시 집권 민정당 소속의원들은 일해재단 모금에 대해 재벌 회장들로부터 ‘자발적 모금’을, 야당 의원들은 강제모금 증언을 이끌어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전두환 정권과 그에 야합해 이권을 챙긴 기업인들 모두에게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청문회 기간 동안 정곡을 찌르는 질문으로 깊은 인상을 심었던 초선의 노무현 의원은 일해재단 청문회에서 정경유착의 실체를 파헤쳤습니다. “나는 시류에 따라 산다”던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바른 말을 하는 용기를 가지지 못했던 것을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실토를 받아냈습니다. 5공 청문회장에서 노무현 의원이 정주영 회장을 심문한 내용입니다.  


노무현 : 시류에 순응한다는 것이 힘 있는 사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 간다는 그러한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정주영 : ……(침묵)
노무현 : 그것을 단순히 현상유지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좀 더 성장하기 위해 힘 있는
           사람에게 접근하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까?
정주영 : 힘 있는 사람에게 잘못 보이면 괴로운 일을 당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영합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노무현 : 혹시 그 순응이 부정한 것이라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정주영 : 능력에 맞게 내는 것은 부정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 일해가 막후권부라는 것이 공공연히 거론되기 이전에는 묵묵히 추종하다가
           그 권력이 퇴조하니까 독자적인 견해, 거스르는 말을 하는 것은 시류에 순응하는
           것이 아닙니까?
정주영 : ……(침묵)
노무현 : 왜 돈 문제가 아니라면 진작부터 6·29 이전부터 바른말을 하지 못했습니까?
정주영 : 그러한 용기를 가지지 못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노무현 : 이렇게 시류에 순응하는 것이 힘이 있을 때는 권력에 붙고 없을 때는 권력과
           멀리하여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가치관의 오도를 가져오게 하고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양심적인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다고 보지 않습니까?
정주영 : ……(침묵) 

국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대변해 준 순간이었습니다. 대통령은 ‘청문회 스타’가 되었습니다.  
다음은 대통령이 5공 청문회가 끝나고 1989년 재야나 사회단체에서 강연한 내용입니다. 초선의원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인식했던 5공비리와 정경유착 문제를 되새겨볼 수 있습니다. 

5공비리와 정경유착


13대 국회의원 노무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런데 좀 난감합니다. 여러분들 중에 5공비리 모르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다들 알고 계시면서 저보고 하라니 할 말이 있어야지요.

엄청난 부정부패, 밝혀진 건 손톱만큼 뿐5공비리, 요즈음 숫자가 밝혀진 것은 전두환 이순자 부부가 일해재단, 새마을본부, 새세대육영회, 새세대심장재단 이 4군데 가게를 벌려놓고 주로 재벌들한테 걷어 들인 돈이 2,700억 정도 된다, 이런 얘기들이지요.

우리 서민들이야 이 돈만 해도 어안이 벙벙해져서 그 돈이 얼마나 되는 돈인지 전혀 감이 안 잡히지만 사실 그 돈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정부패의 규모에 비하면 손가락 하나 정도 밖에 안 되는 겁니다. 언제 도둑질 해먹고 사는 사람들이 가게 차려놓고 도둑질 합니까?

앞에서 말한 2,700억은 가게 차려놓고 정문으로 받은 돈이고, 뒷문으로 따로 받은 돈은 얼마인지 알 수가 없지만 아무래도 도둑질한 돈이니 앞문으로 내놓고 한 것보다는 뒷문으로 숨어서 한 것이 훨씬 더 많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아무리 밝히라 밝히라 해도 안 밝히고 버티더니 얼마 전 전두환 씨가 백담사로 가면서 그동안 뒷문으로 걷어서 정직하게(?) 쓰고 남은 돈이 139억 원이라고 내놓았습니다. 그동안 민정당 정치자금, 심복정치인, 심복군인에 대한 하사금이 다 여기서 나왔고, 지난번 대통령선거 때 어마어마하게 풀린 돈도 그 호주머니에서 나왔다고 하니 그 수입 지출의 규모는 엄청나겠지요.

그런데 여러분, 그 돈이 얼마인지 밝혀져 봤자 5공비리의 전모가 밝혀지는 것도 아닙니다. 권력자가 어디 전두환 씨 혼자였습니까. 아래위로 통을 짜고 해먹은 규모도 알 수 없거니와, 재벌들이 돈 갖다 바친 대가로 특혜 받은 것은 또 얼마이겠습니까? 결국 전체는 다 밝혀낼 수도 없고, 어떻든 밝혀진 것은 손가락 한 마디도 안 된다 이렇게 보면 속 편하지요.

재벌들이 낸 돈이 재벌 자기들 돈인가대체로 청문회에 나와서 증언하는 재벌들 인상을 보면 표정이 두 가지예요. 하나는 자기도 억울하게 뺏겼다는 것이고, 하나는 내가 번 돈 내가 주었으니 억울해도 내가 억울한 일인데 왜 모두들 그렇게 말들이 많으냐는 표정입니다. 

여러분, 과연 재벌이 낸 돈이 자기들 돈입니까? 정말 주기 싫은 돈을 억울하게 빼앗긴 겁니까? 여러분, 별로 복잡하게 따져 보지 않아도 재벌들이 낸 돈은 모두 우리 서민들 호주머니에서 나간 돈입니다. 

1988년 11월 7일부터 사흘 동안 열렸던 13대 국회 5공비리조사특위 일해재단 청문회장에서 증인으로 나온 정주영 현대 회장을 심문하고 있는 노무현 의원


첫째는 세금이지요. 재벌들은 전두환 씨한테 갖다 준 돈에 대해 모두 영수증을 받아서 회사경비로 처리했습니다. 그 돈이 경비로 처리되지 않았더라면 이익이 남았겠지요. 이익이 100억이면 법인세, 소득세, 방위세 다 보태면 세금이 60억이나 70억 정도 되니까. 결국 재벌들이 100억을 뒷구멍에 갖다 주어 버리면, 국민들 세금이 60억이나 70억씩 늘어나게 됩니다.

결국 여러분들 호주머니에서 나간 것이지요. 이렇게 말하면 소득이 높은 사람은 세금을 많이 내고 소득이 낮은 사람은 세금을 적게 내게 되어 있으니 소득이 시원찮은 서민들은 배 아플 것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조세구조가 잘못되어 있어서 간접세가 전체 세금 수입의 반이 넘습니다. 간접세 중에서도 제일 큰 것이 부가가치세인데 여러분이 사 입은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는 물론이고 라면 한 봉지, 소주 한 잔에도 세금이 다 붙습니다. 

다음은 전가의 구조에 의해서 세금을 뺀 나머지도 모두 서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옵니다. 여러분, 3대 거짓말이 있다고 하지요. 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말,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말,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 이 세 가지를 3대 거짓말이라고 하는데, 여러분, 우리나라에서 제일 장사 잘하는 사람이 누굽니까? 재벌들 아닙니까? 부산 국제시장에서 헌옷 장사하는 사람들도 밑지는 장사 안 하는데 재벌들이 밑지는 장사 할 것 같습니까? 이런 재벌들이 몇 백억씩 자기 호주머니에서 고스란히 바치고 가만있을 리가 없습니다. 물건 값을 올리고 하청계열 기업에 떠넘기고 하는 거지요. 대부분의 소비재 시장은 몇몇 재벌사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 마음대로 물건 값을 올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재벌들이 어디 갖다 바친 돈은 상품 값에 붙어서 소비자들에게 떠 넘겨집니다. 한편으로는 또 하청기업에 떠넘깁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60% 이상이 대기업에 납품을 하거나 하청을 맡아 하는 기업입니다. 납품가격이나 하청단가를 깎아서 떠넘기는 거지요.

1982년도에 감사원에서 정부 발주 공사의 단가를 조사해본 결과 처음 정부에서 대규모 건설업체에 공사를 맡길 때의 단가는 내정가액의 93%인데, 공사를 맡은 대규모 업체가 하청업체에 공사를 맡길 때의 공사단가는 내정가격의 5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보통 재벌기업인 대규모 업자는 공사 한 건 맡아서 넘겨만 주고 36%를 먹은 것입니다. 100억짜리 공사라면 36억을 먹은 셈이지요. 100억짜리 공사를 57억에 맡은 사람은 공사를 어떻게 합니까? 부실공사가 되는 거지요.

그러나 부실공사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자재를 줄이는 데도 한계가 있지요. 시멘트 들어갈 데 흙 넣고는 안 되고, 철근 들어갈 데 수수깡 넣고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결국 만만한 것은 노임이지요. 노임을 깎아서 수지를 맞출 수밖에 없으니 결국 마지막에 죽어나는 것은 노동자입니다. 

납품업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간 납품업자는 그 아래 납품업자에게 떠넘기고, 결국 더 떠넘길 데가 없는 사람은 노임을 깎는 수밖에 없지요.

이렇게 떠넘기다 보면 결국 죽어나는 것은 결국 몸뚱이 하나로만 먹고사는 노동자들만 죽어나고, 소비자들만 녹아나는 겁니다. 그런데 노동자나 소비자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이지요. 다 같은 서민들입니다. 

재벌들이 받은 특혜도 결국 서민부담지금까지 부패한 권력자와 공무원들의 호주머니에 들어간 돈만 가지고, 그것도 손가락 한 마디 정도도 안 되는 돈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수판을 놓아 보았습니다만, 권력자나 공무원들이 받아먹은 돈은 아무리 커보았자 재벌들이 먹은 돈에 비하면 또 새 발의 피에 불과합니다. 

조금 전에 말씀 드렸죠. 청문회에 나와서 억울하게 당한 것처럼 엄살떠는 사람들, 정말 마지못해 당한 겁니까?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자유당에서 민주당으로, 박정희에서 전두환, 노태우로 정권은 바뀌었어도 끄떡없이 살아남은 사람들입니다. 눈치 없이 고집 부리던 몇몇 사람들은 억울하게 당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공룡처럼 몸집도 커지고 문어발처럼 영향력도 더 커졌습니다.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공돈을 내놓아요.

처음 한두 번은 살아남으려고 돈 보따리 싸들고 권력자를 매수하러 다닌 건 사실이지만, 일단 한 번 짝짜꿍이 되고나면 그 때부터 돈이 권력을 갖고 놀게 되는 겁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권력자나 끗발 좋은 공무원에게 돈 보따리 싸다 주는 것, 그것도 장사입니다. 장사는 남아야 장사입니다. 장사 중에서도 뒷구멍 거래는 엄청나게 남는 장사입니다. 그것도 주는 사람이 제 것을 주는 것이 아닐 경우에는 인심이 후하지요. 권력자가 뇌물 받고 인심 쓰는 것이 어디 자기 것 주는 겁니까? 그러니까 뇌물이 1억이면 특혜는 몇 억, 몇 십억 되기 마련이지요.

박정희 시절 이래 차관도입, 수의계약, 금융특혜, 부실기업 인수특혜, 그 무궁무진한 부정들은 책으로 써내도 수십 권을 써내야 할 겁니다. 정부와의 계약에서 생기는 부정이득은 결국 국민들에게 세금으로 돌아오고, 금융특혜, 각종 이권특혜는 물가에 떠 넘겨져 결국 서민들 호주머니로 돌아오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재벌들에게 특혜로 돌아간 돈이 얼마인지는 지금 아무도 계산해내기 어렵지만 어떻든 재벌들이 권력자들에게 싸다 바친 돈보다 몇 배, 몇 십 배가 넘고 그것이 모두 우리의 국민들, 궁극적으로 서민들의 부담으로 떠넘겨진 것은 사실입니다. 

1988년 '5공 청산' 부산 가두집회에서 연설하는 노무현 의원과 거리에 붙은 플래카드


부정한 돈은 돌아다니면서 없는 사람들을 못살게 한다 여러분, 그렇게 부정하게 긁어모은 돈이 재벌이나 권력자의 금고에 가만히 있기만 하면 그런대로 참고 견디지요.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고 그 돈이 돌아다니면서 없는 사람을 더 못살게 하니 문제입니다. 

권력자나 부정한 공무원이 사업을 합니까. 만만하니까 땅을 삽니다. 본시 땅덩어리가 좁은데다가 경제개발과 도시화에 따라 가뜩이나 땅이 부족하여 땅값이 오르는데,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 땅을 사놓고는 안 내놓으니까 땅값이 더 오를 수밖에 없고 땅값이 끊임없이 오르니까 이젠 땅 투기가 춤을 춥니다. 

땅값이 오르니 집세가 오르게 되지요. 집세가 오르게 되니 남의 공장 세 얻어서 사업하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 줄 수가 없습니다. 

구멍가게 집세가 오르니 반찬가게는 반찬값을 안올리고는 수지를 맞출 수가 없습니다. 결국 월급쟁이 월급봉투에서 얼마 뜯고, 가정주부 시장바구니에서 얼마 축내어 땅주인 호주머니로 들어가니 없는 사람 살기가 어려워집니다. 

자기 집이나 가진 사람은 그래도 낫습니다. 도시에서는 자기 집을 가진 사람들이 절반도 안 되는데, 남의 집 세를 들어 사는 사람은 정말 죽을 지경입니다. 입을 것 안 입고 먹을 것 안 먹고 아이들 학비, 용돈 한 푼 가지고 매일 아침 싸움싸움 해가면서 몇 푼 저축해 놓으면 집 주인이 집세를 올려 몽땅 털어가 버립니다. 

그나마 저축도 할 수 없는 사람은 방 두 칸 전세에서 방 한 칸으로, 사글세로 쫓겨 가다가 끝내는 철거민이 되어 변두리로 변두리로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결국 없는 사람 호주머니를 털어서 돈을 모은 사람은 그 돈으로 놀고먹고 남는 돈은 다시 부동산에 투자하여 다시 없는 사람을 쥐어짜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부정부패가 제도로 굳어진 것이 정경유착이다우리는 보통 부정부패 하면 뇌물과 특혜를 생각하게 되지만, 지금까지 우리의 정치는 그때그때 직접 뇌물을 주고받거나 특혜를 주고받지 않아도 재벌들이 일상적으로 돈으로 권력을 뒷받침해 주고 권력은 항상 돈 많은 사람들에게 유리한 정치를 하여 왔습니다. 이것이 정경유착인데, 본질에서는 부정부패와 같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정경유착도 5공비리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치고 정경유착이 없는 나라는 별로 없겠지만 우리가 잘 아는 나라 중에서는 일본과 미국이 정경유착이 심한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일본 뺨치는 정격유착이 계속되어 왔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박정희 정권 이래 돈보다 총칼이 더 큰소리를 쳤다는 점이겠지요. 

어떻든 정경유착이란 돈이 정치를 움직입니다. 돈이라도 조무래기 돈이 아니라 재벌들과 같은 큰돈이 정치를 움직이게 되니 정치가 하는 일이나 그 밑에서 정부가 하는 일 모두가 재벌들 배만 불려주게 되고 그만큼 서민들의 살림을 어렵게 만듭니다. 

법을 만들어도 재벌들에게 불리한 법은 안 만들어지고, 경제정책도 재벌들에게 불리한 것은 안 나옵니다. 원체 재벌들이 경제를 독점하여 중소기업을 마구 죽이고, 은행돈을 몽땅 다 빌려 쓰고, 시장도 독점하고, 나중에는 전국의 땅까지 모조리 다 차지하여 국민경제에 너무 큰 폐를 끼치고, 중소기업의 반발이 심해지니까 재벌을 규제하는 법률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그런 법도 처음에 안은 그럴 듯하게 나오다가 나중에 장관 결재를 거치고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를 통과할 때는 거의 유명무실한 법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나마 제대로 시행도 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재벌들이 독점금지법을 위반한 사건은 수없이 많지만 법은 경제기획원의 고발이 없이는 처벌을 할 수 없게 되어 있고, 지금까지 경제기획원은 단 한 번도 고발을 한 일이 없습니다. 

지난 번 백화점 사기세일 사건이 났을 때도 신문마다 그렇게 크게 떠들었는데도 경제기획원은 끝내 고발을 하지 않았습니다. 신문을 보면 재벌기업에 대한 은행여신을 규제한다는 보도는 요란한데 재벌에 대한 여신 규모는 전혀 줄지 않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하여 중소기업 고유 업종이라는 것을 지정해 놓고 있지만 그것도 재벌들의 입김에 하나씩 둘씩 무너져 버렸습니다. 재벌들을 규제하는 경제관계법이나 경제정책만 유명무실한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적용되는 일반 법률도 재벌이 걸리기만 하면 흐지부지 효력을 잃고 맙니다. 재벌들의 범법 행위가 신문에는 자주 나지만 언제 재벌들이 처벌받는 것을 본 일이 있습니까?

현대재벌이 매립한 충남 서산 매립지의 어민들은 지금도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싸우고 있지만 정부에서는 본체만체 하고 있고, 매립지 위에 수천 평의 무허가 건물이 있다고 진정을 해도 누구 하나 처벌받았다는 소리 들어보지를 못했습니다. 

결국 정경유착이란 돈이 정치를 지배하여 정치가 있는 사람 손에 놀아나게 되니 결국 없는 사람만 더욱 가난해지고 억울한 꼴을 당하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은 사회를 파괴한다여러분, 이제 시야를 조금 넓혀 봅시다. 지금까지 우리는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을 돈 문제로만 따져 보았습니다만 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의 구조가 일반화되면 우리 사회가 파괴됩니다. 

전두환 씨가 정권을 잡으면서 우리 사회에 새로 생긴 말이 있습니다. 정의로운 사회, 정직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라는 구호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로 돈 있고 빽 있는 사람, 권력에 아부 잘하는 사람, 눈치 빠른 사람, 거짓말 잘 하고 뒷거래 잘하는 사람은 떼돈을 벌어 큰소리 떵떵 치며 대우받고 살고, 학교에서 배운 대로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항상 뒤떨어져 기를 펴지 못하고 사는 불의한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근로의욕이 저하됩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 보았자 살기조차 힘들고 기껏 성공해 보았자 돈줄, 빽줄이나 찾아다니며 재주넘기나 하면서 빈둥빈둥 노는 사람들보다 뒤떨어지니 일할 맛이 나지를 않습니다. 가뜩이나 재주치기 하는 놈들 거들먹거리는 꼴이 아니꼬운데 어쩌다가 그놈들하고 시비라도 붙어서 한 번 치고받고 싸우거나 교통사고가 나거나, 이웃에 살면서 시비라도 붙는 날이면 법은 온데간데없고 잘했든 못했든 없는 놈만 설움을 당하게 되니 분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결국 자기도 재주 부릴 능력이 있는 사람은 너도 나도 돈줄, 빽줄 찾아서 재주부릴 궁리나 하게 되고 그런 능력도 없는 사람은 칼 들고 나서거나, 실의에 빠져 마약이나 맞고 타락하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사회가 이 모양이 되면 그도 저도 못해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위로는 부정부패에 시달리고 아래로는 각종 범죄의 불안에 시달리고, 남편과 자식의 타락한 모습에 속을 썩어야 하는 불행이 언제 어느 때 나에게 닥쳐올지 모르는 불안에 시달려야 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양심 있고 용기 있는 젊은이들은 이런 꼴을 그냥 두고 보려 하지 않습니다. 권력자들은 요즈음 젊은 학생들의 시위를 보고 좌경용공이니 폭력혁명세력이니 선전하면서 마구 때리고, 짓밟고, 잡아 가두지만 우리 사회에 부정과 부패가 없고 그로 인한 가난한 사람의 고통이 없고, 도덕과 사회정의의 파괴가 없다면 그들이 왜 나섭니까?

사회가 시끄럽고 불안한 것은 모두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때문입니다.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이 근절되지 않는 한 젊은이들의 싸움은 그치지 않을 것이고, 스스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저항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렇게 싸움이 계속되다 보면 사회의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결국은 사회가 파괴될 지경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부정부패를 뿌리 뽑으려면 독재체제를 청산해야사람 사는 사회치고 부정부패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는 국민의 거센 비판과 감시 때문에 눈치 보느라 숨어서 살금살금 하기 때문에 그 사회를 파괴할 만큼 판을 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독재체제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언론이 맥을 못 쓰니 돈과 권력이 짜고 하는 부정을 밝혀 낼 수가 없습니다. 어쩌다가 밝혀지는 것이 있어도 보도를 할 수 없으니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습니다. 

언론을 통한 비판이 없더라도 국민들은 생활경험을 통해서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의 부조리를 느끼지만 저항이 불가능합니다. 직장에서 쫓겨나고 감옥에 가지 않으려면 보고도 못 본 체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양심이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손해를 보면서도 비겁하게 눈치만 살피며 살아야 하는데 반하여 권력과 짜고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번 사람들은 독재체제만큼 편리한 것이 없습니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돈으로 이권을 요리하고 특혜를 받아 더 큰 돈을 벌기도 쉽고, 아무리 법에 걸리는 나쁜 짓을 해도 끄떡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뇌물 말고도 독재권력에 정치자금을 주기도 하고 무슨 단체 같은 것을 만들어 독재를 지지하는 성명을 내거나 독재를 지지하는 단체에 돈을 대주어 독재정권을 지지하고 민주화운동을 방해합니다. 

요즈음에도 좌경용공 척결이니 자유민주주의 수호니 하고 나서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대부분이 과거 독재체제 아래서 떼돈을 벌어 떵떵 거리면서 4·13 호헌조치의 지지성명이나 내던 사람들입니다. 

독재체제의 청산은 국민의 힘으로만 가능하다결국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이 사회를 파괴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오랫동안 이 땅에서 독재가 판을 쳐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독재체제가 오래도록 판을 치게 한 것은 우리 국민들의 책임입니다. 

국민들이 독재와 정경유착에 스스로 피해를 입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군인들이 총을 들고 나올 때마다 국민투표로 그들을 지지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그들은 헌법을 자기들 편리할 대로 뜯어고쳐서 독재체제를 강화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들에게 아부하기 좋아하고 국물이나 얻어먹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정당에 표를 몰아주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국민이 이제 와서야 분해 하는 것도 다 자업자득입니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세계 역사상 독재자가 스스로 물러나거나 마음을 돌려서 민주주의를 한 역사는 한 번도 없습니다. 독재체제의 청산은 오로지 국민의 힘으로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지난 1987년 6월 항쟁으로 독재체제를 완전히 청산하는 데는 실패하였지만, 국민이 들고 일어났던 결과가 전혀 헛되지는 않아서 정치·사회의 분위기가 적어도 부정부패는 어느 정도 감시할 수 있을 만큼은 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낙관할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 잘 해먹었던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가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마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온갖 음모를 다 꾸미고 있습니다. 

여당이 5공특위에 불참하여 5공비리의 조사를 방해하고, 좌경척결이니 자유민주주의체제 수호니 하는 구호들을 내세워 칼을 뽑아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노동운동 때문에 우리 경제가 망하기나 할 듯이 위기감을 조성하여 공권력을 마구 휘두르는 것이나, 5공시절 재미를 보던 사람들이 여기에 맞장구를 치고 나오는 것이나 모두 옛날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 국민이 또 속아 넘어 가거나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정말 세상이 다시 옛날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다시 분하고 억울한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우리 국민들이 정신을 차려 다 함께 민주화운동에 나서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다함께 힘을 모읍시다.
 
 
  • 김상철/ 노무현재단 사료편찬특별위원회
  • 2011.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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