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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이야기 유의미한 주요 사료를 소개하고 그 배경과 맥락을 정리해 제공합니다.

2004년 3월 12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의결됐습니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였습니다. 거대 야당들의 정략에서 비롯된 ‘억지’ 탄핵은 한 달 뒤 치러진 총선에서 국민들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가 5월 14일 탄핵기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한국 정치사에 오점을 남긴 탄핵정국의 배경과 국회 발의에서 가결 과정, 탄핵 반대 촛불시위, 헌법재판소의 심판 소송을 재구성했습니다..

정치권 비리 수사와 정략적 탄핵 공세

탄핵정국①

 

참여정부 첫해(2003년), 정치권은 여름부터 불거진 불법 정치자금을 둘러싼 비리 의혹과 노무현 대통령의 여야 대선자금 공개 촉구로 요동쳤다. 그해 가을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쪼개져 열린우리당이 창당하면서 야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무당적이 된 대통령을 향해 끊임없이 정치공세를 퍼부었다.

 

검찰의 정치권 전방위 수사 ·· 방탄국회에 비난 여론

검찰의 정치권 비리 수사가 진행되면서 여야 의원들과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고, 연말이 되면서 수사 결과가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12월 6일 검찰은 현대그룹 비자금 사건 관련해 국회 정무위원장 시절(2000년 9월) 고(故)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국정감사 증인 제외 청탁과 함께 현대에서 돈을 받은 혐의로 한나라당 박주천 의원과 역시 같은 청탁을 받고 자신과 친분 있던 건설업체가 하도급 공사를 수주토록 한 민주당 이훈평 의원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로써 검찰이 영장을 청구해 국회에 체포동의안을 요청한 현직 의원은 6명에 달했다. 이들 두 의원 외에도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세무조사 무마 명목으로 돈을 받은 박명환 한나라당 의원과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 의혹이 제기된 박주선 민주당 의원, 굿모닝시티 인허가 청탁 관련 정대철 열린우리당 의원, 자신이 운영하는 대학의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박재욱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하지만, 비리 혐의가 제기된 의원들의 사법처리는 국회가 계속 소집되는 바람에 이뤄지지 못했다. 검찰 수사에 위기를 느낀 정치권은 방탄국회를 열었고, 국회는 체포동의안 처리를 미뤘다. 더군다나 검찰이 수사 중인 대통령 측근비리 사건을 놓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특검에 이어 재특검까지 공조하며 소속의원들의 비리를 덮으려 하자 비난 여론이 거셌다.

한편,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 관련해 검찰은 12월 9일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의 법률고문 서정우 변호사를 긴급 체포했다. 한나라당이 2002년 대선 당시 삼성에서 100억 원, LG에서 150억 원을 조성했고, LG로부터는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주차장에서 트럭에 실은 현금 상자를 전달받은 것을 밝혀내 ‘차떼기 정당’이란 말이 등장했다. 이때까지 드러난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의 규모는 최돈웅 의원이 SK에서 받은 100억 원까지 합쳐 350억 원이었다.

이어 10일 검찰은, 한나라당이 삼성에 300억 원을 요구해 현금 40억 원과 채권 112억 원 등 152억 원을 추가 수수한 사실과 11일에는 “서정우 변호사로부터 현대자동차에서도 100억 원을 받은 진술을 확보했다”고 잇따라 밝혔다. 15일에는 이회창 전 총재가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불법 대선자금 속속 드러나 ··· 한나라당은 차떼기로

한편, 검찰의 대통령 측근비리 수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12월 16일 특검(김진흥 변호사)이 임명됐다. 이날 노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특별기자회견을 열어 정치권에 “반성의 정치로 새 정치의 희망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자”고 제안했다. 대통령은 “(정치권이) 수사에 협력하고 모든 사실을 밝힌 후 우리 정치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며, “곧 총선이 다가오기 때문에 이 모든 노력을 한 다음에 겸허하게 국민의 심판을 받자”고 말했다.

이어 이틀 전 4당 대표 회동 당시 ‘한나라당 불법자금의 10분의 1 넘으면 정계은퇴 용의’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의 근거 없는 의혹 제기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라고 설명하면서 “실제로도 그런 확신을 갖고 있고 그 말에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또한 대통령 주변 수사와 사법처리에 대해서는 “의혹으로 시달리지 않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 철저하게 하느라고 노력했지만 그렇지 못했고, 부끄러운 모습이 돼 있으니 국민들게 미안하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현 정국은) 혼란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로 가기 위한 진통의 과정, 우리 사회가 부정부패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홍역을 치르는 과정으로 믿고 있다”며, “제도와 정당문화를 함께 개선해나가는 노력을 정치인들도 스스로 하고, 국민들도 우리 정치를 바꿀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2003년 12월 16일 노무현 대통령 특별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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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9일 검찰은 대통령 측근비리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노 대통령이 한때 운영했던 샘물회사 ‘장수천’의 채무 변제금 조달 과정에서 안희정 씨 등 측근들이 편법을 동원했고,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문병욱 썬앤문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것이다. 또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SK를 포함해 21억 4천만 원의 불법자금을 모으고, 일부를 횡령했다”며, “불법자금 액수가 40억 원”이라고 밝혔다.

검찰 발표에 대해 청와대는 “검찰이 여론을 의식한 나머지 억지로 형평을 맞췄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면서 장수천 채무 변제를 위한 용인 땅 매매 형식을 문제 삼은 것에 “동의할 수 없고”, 썬앤문 감세 청탁 의혹도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또한 “검찰이 확정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단정해 발표한 것은 문제”라며, “관련 부분들과 불법 대선자금은 별개”라는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 측근비리 수사 결과가 나오자 노무현 대통령은 12월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 송년 만찬에서 “국민에게 사죄할 것은 사죄하고, 용서를 구할 것은 용서를 구하겠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언제나 고단하게 걸어 왔지만, 좌절하지 않고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며, “허물이 있지만 허물을 딛고 소명감을 가지고 책임 있게 (대통령직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아니면 말고’ 식 폭로정치 … ‘맹탕 청문회’까지 열려

한편, 같은 날 국회에서는 여론의 압력 끝에 상정된 비리 혐의 여야 의원 7명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끝내 부결됐다. 이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차라리 국회를 해산하라”며 강하게 성토했다. 해가 바뀌어 2004년 1월 9일 검찰은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7명 의원들과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 조성 관련해 김영일 전 사무총장 등 8명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했다. 국회가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현역 의원들의 영장을 무더기로 재청구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결국 다음날(10일) 법원이 영장을 발부함으로써 정기국회가 끝나자 해당 의원들은 줄줄이 구치소에 수감됐다.

2004년 1월 8일, 박관용 국회의장과 3당 대표를 만나는 노무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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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당 대표 및 의장과의 간담회에서 박관용 국회의장의 발언을 경청하는 노무현 대통령]
[3당 대표 및 의장과의 간담회에서 박관용 국회의장의 발언을 경청하는 노무현 대통령]
[3당 대표 및 의장과의 간담회에서 박관용 국회의장의 발언을 경청하는 노무현 대통령]
[3당 대표 및 의장과의 간담회에서 박관용 국회의장의 발언을 경청하는 노무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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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검찰의 수사는 계속됐다. 30일에는 민주당 대표 및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한화갑 민주당 전 대표의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에 민주당은 검찰의 영장 집행을 물리력으로 저지하며 대정부 투쟁을 선언했다. 민주당의 정부 공격에 대해 노 대통령은 “검찰이 소신껏 수사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이라며, “정치권으로서는 오늘의 상황이 고통스럽겠지만 정치개혁을 위해 털고 넘어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검찰 수사를 정쟁으로 비화시켰다. 두 당은 2월 2일 제16대 마지막 임시국회(제245회)를 열어 노 대통령을 표적으로 ‘불법 대선자금 등 청문회’를 관철시켰다. 그러면서 9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된 한나라당 서청원 의원에 대한 석방요구결의안까지 가결시켰다.

청문회는 국회 법사위에서 10일부터 사흘 동안 열렸다. 대통령 주변 사람들과 검찰 수뇌부가 대거 증인으로 채택됐다. 검찰과 특검 수사까지 진행되고 있는 사안을 놓고 수사 대상이 수사 주체를 상대로 추궁하겠다는 해프닝이었다. 두 당은 청문회에서 대통령과 그 주변을 음해하는 ‘아니면 말고’ 식 폭로로 일관했다. 결국 정략적 목적으로 시작된 청문회는 맹탕 청문회로 막을 내렸다.

12일 검찰은 불법 대선자금 관련해 “한나라당이 삼성에서 받은 152억 원 외에 채권 170억 원과 현금 50억 원이 더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제기된 대부업체 ‘굿머니’의 여야 자금 제공 의혹에 대한 조사도 시작됐다.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논란 … 시대 변화 못 읽은 법 해석

비리 의혹으로 정치권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총선을 두 달 남기고 시민단체들의 낙선 및 당선 운동이 전개됐다. 300여 개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2004 총선시민연대’는 부패, 비리행위, 반인권, 민주헌정질서 파괴 전력이 있는 정치인 109명을 낙선 대상자로 지목했다. 낙선운동과 달리 다양한 선거 참여 운동이 전개되어 지지 및 당선 운동을 벌이는 ‘물갈이연대’도 꾸려졌다.

그런 가운데 민주당 조순형 대표는 2월 20일 노무현 대통령이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지방분권촉진대회 참석한 것을 불법 선거운동이라며 연초에 이어 탄핵을 입에 담았다. 이어 한나라당은 24일 노 대통령의 취임 1주년 방송기자클럽 회견 중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지지해줄 것으로 기대한다’”는 발언을 꼬투리 잡아 대통령을 선거법 위반으로 선관위에 고발했다.


▲ 2월 24일 SBS 목동 신사옥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 1주년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특별회견. 한나라당은 이날 회견 중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법 위반이라고 공격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정치공세가 막나가는 가운데 조중동은 이를 부채질했다. 한나라당의 대통령에 대한 선거법 위반 공세를 보도한 26일자 <동아>의 사설 제목은 ‘노 대통령 정말 탄핵 받으려는가’였고, <조선>은 ‘선관위원장은 사표로라도 항의하라’였다. 정치권과 보수언론이 문제 삼은 대통령의 발언은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행사도 아닌 언론 회견장에서 패널의 질문에 단순 견해를 밝힌 것 뿐이었다. 선거법에도 ‘공무원의 선거운동을 금지’(제60조)하고 있으나 선거운동에 대해 “선거에 대한 단순한 의견 개진과 의견 표시, 그리고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대한 단순 지지나 반대의 의견 개진과 의사 표시는 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다”(제58조)고 정의해 놓고 있다.

이와 관련해 노 대통령은 3월 3일 제주지역 언론들과 가진 합동 회견에서 “야당이 국회에서 대통령을 필요 이상 공격하며 아주 효과적인 선거운동을 하면서 제가 (기자회견에서) 묻는 말에 대답한 것을 가지고 탄핵하겠다고 한다”며, “지금까지 정당활동을 하면서 우리 쪽 당이 이번에 몇 석을 얻을 것인지 한 번도 헤아려 보지 않았고, 단 한 사람의 공천에도 관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이날 중앙선관위는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에 대해 “선거에서 중립 의무를 지켜줄 것을 요청”하는 ‘주의 조치’ 결정을 내렸다. 선관위의 결정 과정에서 “정당법에 따라 정당 가입이 허용된 공무원인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한 것을 선거법 위반이라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론도 있었으나, 결국 정치적 결정을 내린 것으로 분석됐다.

선관위의 결정에 대해 청와대는 “헌법기관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선진 민주사회에서 대통령의 정치적 의사 표시를 선거 개입 행위로 재단하는 일은 없다”며, “대통령이 모든 특권과 기득권을 포기한 거스를 수 없는 시대 변화의 흐름에서 대통령의 정당한 합법적 권리는 보장돼야 하고 선거법 해석도 달라진 권력문화와 시대적 흐름을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시 선관위의 결정에 대해 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는 이렇게 적고 있다.

“대통령은 정당의 당원이며 정치인이다. 지지하는 정당이 국회에 있어야 입법을 할 수 있고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다. 야당은 대통령을 정치로 공격한다. ··· (중략) ···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해줄 정치세력을 지원함으로써 야당의 정치적 공격에 대항할 수 있다. 이것이 대의제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이다. 대통령이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말이다. 예를 들어 여당 후보가 공무원을 동원해 돈봉투를 뿌리거나 군인들이 여당 후보를 찍도록 병영에서 공개 투표를 지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인 대통령이 선거와 정치에 대한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헌법과 법률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본다”  <운명이다> 235~236쪽

 

대통령의 ‘원칙 대응’ … 국회는 ‘억지 탄핵’ 발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오히려 “선관위에서 ‘경고’나 ‘검찰 고발’ 결정이 나오지 않은 게 유감”이라며,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노 대통령은 두 당의 굴복 요구와 정략적 탄핵 발의 움직임에 정면으로 맞섰다. 대통령은 3월 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탄핵 추진이 정치적 시비에 불과한 만큼 야권의 사과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이고, ‘원칙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탄핵 발의를 둘러싸고 정치권에 긴장이 팽팽한 가운데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불법으로 제공받은 자금은 823억여 원이고, 민주당은 113억여 원으로 집계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옛 민주당이 삼성에서 30억 원, 롯데 6억 5천만 원, 태광 5억 원 등, 한나라당은 두산 2억 원, 기업과 비당원에게 당비 형식으로 13억 원을 받은 사실을 추가 확인했다”며, “총선을 앞두고 있어 계좌추적 및 일부 기업에 대한 수사는 계속하겠지만 정치인 소환 등 직접 수사는 선거 뒤 재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검찰 발표가 있고 다음날(9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소속의원 159명의 서명을 받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발의했다. 헌법에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로 대통령 탄핵 발의(제65조) 규정이 있지만, 실제 발의되기는 제헌 이래 56년 헌정사에서 처음이었다.

탄핵 소추 사유로는 “대통령의 총선 관련 발언이 선거법을 위반했고, 선관위의 결정에도 계속 특정 정당을 공개 지원하겠다고 했다”며, “이런 법치주의 부정과 불법 대선자금 및 측근비리 등 권력형 부정부패로 국가 위기상황을 초래했고, 불성실한 직책수행과 경솔한 국정운영으로 국정이 파탄에 이르렀다”고 적시했다.

이날 발의된 탄핵 소추안은 곧바로 본회의에 보고됐다. 탄핵안이 가결되려면 재적의원 3분의 2 찬성이 필요해 한나라당(최병렬 대표·홍사덕 총무)과 민주당(조순형 대표·유용태 총무) 지도부는 표 확보에 주력했다. 민주당은 표결이 무기명 비밀투표로 진행되는 점을 들어 탄핵안 발의 과정에서 지도부와 입장을 달리해 소추안에 서명하지 않은 의원들을 상대로 설득에 나섰고, 한나라당도 신중론을 편 소장파 의원들에 대한 단속에 나섰다. 또 자민련 및 무소속 의원들의 동참을 독려했다. 이에 열린우리당은 탄핵안 표결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 농성에 들어갔다.

대통령 탄핵 발의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으로서는 ‘도 아니면 모’ 식의 위험한 승부였다. 두 당은 탄핵안을 발의하면서 그 여세를 몰아 대통령에 대한 정치공세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대통령의 굴복과 총선정국에서 검찰 수사로 인한 수세를 뒤집어보겠다는 셈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대통령 탄핵이 어떤 파장을 몰고올 지는 가늠키 어려웠다.

 

“탄핵 사유 안 된다” … 시민단체들, 다수당 횡포 비판

탄핵이 발의되자 대표적 법률가 단체인 대한변협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야당이 제기한 탄핵 사유는 법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헌법학자들의 여론조사(<한겨레>가 3월 10일 실시한 헌법학 교수 42명 전화 설문)에서도 응답자 69%는 ‘탄핵 사유가 안 된다’고 판단했다.

시민단체들도 “야당의 총선용 정치공세”라며, “탄핵 철회”를 촉구했다.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등 15개 단체는 10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탄핵 발의는 온당한 명분도, 헌법과 법률 취지도, 국민적 공감대도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총선을 겨냥한 정쟁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며,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공당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353개 단체가 참여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도 성명을 통해 “정치권이 그동안 직무유기에 대한 뼈를 깎는 자기반성은 하지 않고 대통령 탄핵을 정략에 이용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다수당의 횡포이자 또 다른 형태의 헌정 파괴”라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기자간담회 발언 등이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된다면 선거법 위반과 부정부패로 유죄판결을 받은 의원들을 포함한 대다수 국회의원들의 경우 의원직 박탈은 물론이고 정계에서 영구 추방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성단체연합도 “총선을 앞두고 국민들을 점점 더 정치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으로 등 돌리게 하는 원흉이 바로 16대 국회”라며, “온갖 부정부패와 정쟁을 일삼아온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대통령 탄핵을 추진할 자격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언론들은 탄핵 발의와 이를 둘러싼 시민사회 동향을 자세히 전했다. 그러나 대부분 논조는 야당의 총선용 정치공세를 지적하면서도 시비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과 대통령을 싸잡아 비판했다. 세계 주요 언론들도 한국 국회의 대통령 탄핵 발의를 비중 있게 다뤘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는 ‘서울의 허튼소리들’이란 사설에서 “무책임한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정부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더 많은 국외투자를 유치하려 하고 동북아 허브국가가 되려는 한국의 야심찬 모습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한국의 정치인들을 조롱했다. (다음에 계속)

 

  • 권영준/ 노무현재단 사료편찬특별위원회
  • 2013.01.23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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